자연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우리 가는길을 지켜주기를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라도 지내고 싶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고속도로라는 바닷물로 첨벙 뛰어드는 날, 두려움과 긴장감이 몰려왔다. 모든 신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디, 우리의 여행길이 안전하도록 지켜주세요. 두 어린 아이들의 건강과 웃음을 지켜주세요. 꼭 좀 부탁합니다.
라파쵸라고 하는 자주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나무를 한 그루 마련했다. 우리 여행의 출발지, 이 곳에 나무를 심자. 우리 가족은 바퀴달린 집을 타고 오랜 시간 떠돌겠지만 우리가 심은 나무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을 터이니.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껏 자란 나무 아래에서 맥주 한 잔 할 수도 있지 않을까나!
임태주 시인 어머니가 남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밥을 해서 자식들을 먹이는 것으로 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하는 시인의 어머니, 여행동안 나는 그런 어머니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 간절함으로 가족의 하루를 씻고 정성껏 닦으면 빛나는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깨끗한 마음으로 신에게 비는 것 외에 우리의 악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뭐가 있을까.
나무를 캠핑버스 옆구리에 세워두고 간이 의자를 펼치고 앉아 마테를 마시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인도를 도화지 삼아 알록달록 그림을 그린다.
저녁 무렵 강변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스쳐간다. 그 중에는 멈춰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목소리가 우랑찬 한 사내가 앞에 멈춰서더니 호탕한 얼굴로 대화를 시작했다. 자신도 젊었을때 캠핑카를 타고 알래스카까지 가는 여행에 대한 꿈을 꾸었다며, 이렇게 진짜 여행을 시작하는 가족을 보니 본인이 다 뿌듯하단다.
그리고 그는 직접 만든 수제 맥주를 손수 가져다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았았다. 수제 맥주광인 남편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한모금 한모금 맥주를 음미했다. 나무를 심고 여행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했을때, 시청에 신고해야되는거 아니냐, 아무데나 나무 심게 하겠냐, 빨리 출발하고 싶은데 그럼 며칠 더 지체하자는 거냐, 이러쿵저러쿵 태클을 걸던 그 남편님의 까칠하던 표정은 어디간거죠?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비는 메세지를 남겨 주었다. 돼지머리는 불안을 해소해 주지 않지만, 사람들의 응원 한마디 한마디는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상황들로 떠날수는 없는 사람들, 상황은 되지만 두려움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우리는 그들이 비밀처럼 털어 놓는 바램과 희망과 꿈을 놓칠새라 캠핑버스 안으로 들여 놓았다. 가는 길이 힘에 부칠때, 포기하고 싶을때, 그 비밀들을 슬그머니 꺼내 박카스처럼 호로록 마실테다. 그리고 아이고 힘난다 하면서 여행을 계속할테다.
기름도 가득 채웠고, 물도 만땅이고, 냉장고도 빵빵하고, 아이들은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하루하루 눈을 뜬다.
바로 지금이다.
길을 떠날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