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무작정 쌀 수 없었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버리거나 기부할 물건, 창고에 보관할 물건, 여행에 가져갈 물건으로 분류해서 박스에 넣고 이름표를 다는 일까지 꼼꼼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에 가져갈 물건은 두세 번씩 고민하고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여간 머리 아픈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짐을 정리하고 이사하기로 한날 직전까지도 마무리가 되지 않아 넋을 놓고 있을 때쯤 여섯 명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우르르 힘을 보태주었다.
삼 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던 나무집, 그리고 다정한 이웃들과 작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행 끝나면 다시 돌아올 텐데 뭘, 담담하게 인사하며 웃었다. 그리고 텅 빈 마당으로 들어가 마지막인 것처럼 우리 집 창문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짐을 실은 트럭이 요란하게 시동을 건다. 차에 오르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눈빛도 우리 마음과 같은 듯 반짝인다. 여행 잘 다녀와, 곧 보자, 하면서 인사하는 그들도 우리의 여정이 그리 짧지 않음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그저 이동하면서 살아하는 삶이므로, 캠핑버스에서 일상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다른 종으로 편입될 것이었다.
짐들은 나름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았지만 끼니때가 될 때마다 남의 집 부엌에 떨궈진냥 어쩔 줄 몰라했다. 넉넉하게 챙겨 온 간장병과 양념통은 차가 움직일 때마다 얽히고설켰고, 냄비 하나를 꺼내려면 다섯 가지 물건을 함께 꺼내야 했다. 가스를 절약하려고 한참 동안 끓이고 삶아야 하는 음식은 자제하게 되었다. 베지테리언인 남편과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큰아들, 아직 생야채는 먹지 못하는 17개월 된 막내, 서로 다른 입맛을 어찌 한 번에 충족할 것인가. 가능한 한 건강하게, 불을 많이 쓰지 않으며, 최대한 빨리, 그리고 설거지거리를 많이 남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캠핑버스 안에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나갈 때는 서로 부대낀다. 화장실에서는 몸을 숙이기도 힘들다. 물을 쓸 때마다 펌프를 켜야 하고, 잘 때마다 침대를 펼쳤다 접어야 한다. 부산하게 정리해야 겨우 어지럽지 않은 정도가 유지된다. 설거지를 미룰 수도 없고 물을 맘껏 쓸 수도 없다. 당연하게 누리고 살던 많은 것들이 없으니 그 옛날 개울에서 빨래하고 불 때서 밥 짓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일정도 시간도 정해진 바 없는 이번 캠핑버스 여행은 그런 점에서 비장하다. 불편함과 맞서야 할 테고, 부족함과 절박함도 지나게 될 테다. 어느 순간은 지칠 것이고, 어느 순간은 후회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동하며 사는 삶이라는 선택은 어쩌면 실험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이토록 무모하고 별스러운 실험에 기꺼이, 유쾌하게 우리 자신을 밀어 넣어 본다.
싱크대에 잔뜩 쌓인 물건들을 노려보다가 결국 피자를 사다 먹기로 결정했다. 점심때도 길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는데. 죄책감을 뒤통수 뒤로 애써 넘겨버린다. 남편은 이렇게 매일 먹다가는 지갑이 거덜 나던지 돼지처럼 살이 찌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되겠다며 낄낄 웃었다. 이 사람아, 둘 다야.
강 풍경에 노을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곳에서 차를 멈추고 밤을 보내기로 했다.
부산하게 뒷정리를 하는 사이, 큰 아이는 아빠가 친구와 와인을 마시는 길바닥에 함께 쪼그리고 앉아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다.
불금을 즐기려는 주민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여기저기서 신나는 댄스 음악이 제각기 다른 박자로 들려온다. 춤장 한가운데에 있는 듯 낮은 비트가 쿵쩍쿵쩍 바닥부터 울린다.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한 가족이 고기를 구우려는지 불을 피우고 있다. 이 시간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 소화가 될까, 낯 모르는 가족의 위장을 걱정하며 잠을 청하지만 쉽지 않다. 걸걸한 목소리의 행인이 그의 파트너와 주고받는 말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남편과 아이들은 청음 기능을 멈추는 버튼이라도 있는지 쿨쿨 잘도 잔다. 그나마 다행이다.
자정을 넘긴 시각, 우루과이의 강변, 그리고 캠핑버스의 침대.
무지 낯설다.
엄청나게 두근거려 잠이 잘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