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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Dec 03. 2018

눈눈버스의 “감동 여행”

여행을 하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행복하기 위해서- 라는 말은 여행을 하는 이유로 충분할까.


여행을 왜 하냐는 질문은 왜 사느냐는 물음만큼 대답하기 어렵다.


혹시 당신,


극기 훈련하듯 빡빡한 일정에 사진만 찍고 다니는 여행이 더 이상 의미 없이 느껴진다면

편안하고 안락하게 여행을 했지만 돌아와서 헛헛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면

다양한 체험만 했을 뿐 정작 여행지에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

여행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런 당신을 위해 생각한 여행법이 하나 있다.


감동 여행.


감동이라는 말은 약간 간지럽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전제하는 '여행에서의 감동'은 이과수 폭포의 장대한 물줄기를 보면서 신의 전지전능하심을 느끼는 감동이라던가, 백 년 된 우동집에서 세계 유일의 우동을 맛보며 느끼는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종류의 감동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누리고 있으며, 어찌 보면 얻기 쉬운 만족감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깊고 오묘한 바다에서 '감동'이라는 물고기를 수확하려 한다.


말하자면, 감동 여행은

여행지에서

우리의 재능과 시간을 활용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내 돈 들여 귀중한 시간을 써가면서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해?

내 한 몸 감동시키기에도 부족한데?

(이런 생각이 드는 분이라면 그냥 멋들어진 호텔에서 자면서 인터넷에 올라온 맛집을 탐방하는 여행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여행 자체에 자신의 삶의 가치가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세상을 좀 더 밝고 따듯한 곳으로 만드는데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기꺼이,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여러 사례들을 공유해 보려 한다.


오토바이 도서관


안토니오 라 까바 할아버지는 은퇴 후 여행 중이다. 손수 개조한 오토바이에 700여 권의 책을 싣고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교사로 재직할 시절, 아이들이 점점 기술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치중하고 학교라는 공간에 사랑이 없다고 느끼셨다고 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의무가 아닌 감동이자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백 권의 책을 싣고 아이들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계신다.

maxers.mx
maxers.mx


실뜨기 아메리카


실뜨기 놀이만큼 단순한 놀이가 또 있을까. 서른 다섯 동갑 커플인 노엘리아와 리오넬은 실뜨기 놀이 강의를 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있다. 실뜨기를 통해 전통 놀이의 가치를 회복하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것이 이들 여행의 핵심 프로젝트이다.

hilandoamerica.org
hilandoamerica.org


노마드 미소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이 팀은 개조한 소방트럭을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www.facebook.com/somriuresnomades/photos/
www.facebook.com/somriuresnomades/photos/


하니마 패밀리


바르셀로나에서 온 이 가족은 캘리포니아에서 캠핑카를 장만해 남쪽으로 여행 중이다. 아나는 도울라, 그러니까 출산을 도와주는 전문 산파이자 모유수유 전문가이다. 도착하는 여행지에서 출산을 돕거나 임산부들에게 자연주의 출산과 모유수유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www.facebook.com/pg/JanimaFamily/photos/
www.facebook.com/pg/JanimaFamily/photos/


감동 여행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들은 휴가기간 동안 짬을 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행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봐야 하겠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여행을 하면서 자신들의 재능과 관심사를 활용 해 프로젝트화 하고 있다. 이러한 여행 방식은 자신의 여행을 브랜드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이 주인공인 수 십 편의 단편영화를 꿈꾸며


우리 여행 프로젝트의 이름은 '눈눈버스'이다. 지난 2011년부터 아르헨티나에서 빈민촌 아이들을 대상으로 단편 영화 제작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익숙한 분야이기도 하고, '문화예술 놀다'(www.nolda.net)라는 기관으로부터 영화 제작 수업 프로그램을 전수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빈민촌에서 아이들이 쓴 시나리오로, 그들 스스로 촬영하고 연기하는 단편 영화 만들기를 진행하면서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하려면 함께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냥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면서 교류하는 것보다 단기간이더라도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서로의 스토리를 이야기 하는 과정을 통해서 훨씬 더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단편 영화를 완성하면 항상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의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서 상영회를 하곤 했는데, 한 엄마가 상영회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아들은 집에서는 말을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선택적 벙어리'라는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제작 수업 중에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아이다. 말만 하지 않을 뿐 진행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오디오맨을 맡겼었다. 백스테이지 메이킹 영상에서 묵묵히 붐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본 엄마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늘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던 아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영화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함에 마음이 저려왔을 것이다.  


아이들과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감동을 이번 여행에도 고스란히 가져가고 싶다. 그저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여행이 아닌, 가슴과 가슴으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눈과 눈을 마주치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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