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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Dec 03. 2018

여행의 품격

여행에 삶의 가치를 녹이는 분들을 위하여

아직도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 찍고 돌아오는 것을 여행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

14박 15일의 일정 동안 유럽 8개국을 도는 패키지 투어를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있을 수 있다)


조금 격이 다른 여행을 논해보자.


과거 사람들이 짧고 굵게 편하게 관광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면,

요즘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조금 고생하더라도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얻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현재 남미를 육로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한번 주목해 보자.


이곳의 여행자들은 자전거, 자동차, 캠핑카, 본인이 개조한 트럭 등 다양한 형식으로 다니지만 무조건 육로로 이동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는 항공 여행과는 다르게 이러한 여행 방식은 여행의 시간을 독특하게 끌어올린다. 도시마다 훨씬 긴 시간을 소요하고, 큰 도시가 아닌 곳들도 거쳐가며, 특히 사람들과 깊게 접촉하게 된다. 이들의 경험은 단순히 멋들어진 관광지에서 신기한 것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갑자기 차가 고장 나서 생판 모르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여행자라는 이유로 식사에 초대를 받는다거나 그냥 이유 없이 돈을 쥐어주고 가는 호의를 경험하기도 한다. 삶의 우연성과 여행자의 절박함이 어우러져 매일매일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과 삶으로 내려앉아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는 짜릿함까지 더해진다.


이들의 대부분은 기름값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다. 대부분은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빠듯하게 출발해서 길 위에서 필요한 경비를 충당한다. 각자의 재능과 여건에 따라 그림을 그려 팔거나, 팔찌나 목걸이를 손수 만들어 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팔거나, 직접 찍은 사진을 인쇄해서 엽서로 만들거나, 미용 기술을 활용하거나, 가구를 만들어주거나, 농장에서 단기로 일을 해주거나, 페이스 페인팅을 하거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여행을 이어간다. 이렇게 버는 돈은 사실 겨우 기름값이나 밥값을 충당할 정도기 때문에 차창에다 기름 도네이션을 부탁하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여행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사람들은 여행자들에게 관대하며 관심이 많고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갖가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대가 없이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바로 낯 모르는 타인들이다. 돈을 받지도 않고 차를 고쳐주는 사람, 음식을 싸들고 와서 먹어보라고 하는 사람, 샤워를 하라고 욕실을 선뜻 내주는 사람, 여행 잘 하라며 노래를 지어 불러주는 사람 등등 이 세상에 그렇게 선한 사람들이 많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다.


이제 여행은 피상적으로 경험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색적인 모험으로 포장된 단순한 체험에서 머물지 않는다.


이제부터 여행은,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길 위에서 펼쳐질 때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삶에서 어려운 순간들마다 슈퍼맨처럼 짠 하고 나타나 대가도 없이 도움을 주고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을 만나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정말로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움켜쥐고 점점 큰 욕심으로 점철되는 삶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뿐 내 손안에 쌓여 축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길을 떠나는 이유이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받아본 사람은, 또한 받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베풀게 된다. 나눠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곳의 많은 여행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하나씩 챙겨 길을 떠난다.


책을 가지고 여행을 하면서 방문하는 작은 마을마다 아이들을 모아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실을 가지고 여행을 하면서 농촌의 학교들을 방문해 실 놀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광대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며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에서 주민들과 단편 영화 만들기를 하며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해온 프로젝트인데 이번 여행에서 더 재미있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관심 있는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을 모아 그들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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