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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새해맞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불꽃놀이

by F와 T 공생하기
운 좋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하기 바로 직전에 스페인 여행을 하며, 마드리드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헤타페 등, 바르셀로나에서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의 라리가, 유로파리그, 챔피언스 리그 경기 모두를 저렴하게 볼 수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꽤 먼 거리를 지나 시내 외각에 위치한 경기장을 찾아가야 한다. 예컨대 버스 안은 이미 각 팀의 응원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유난을 떠는 것으로 보이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진심이다.


경기장은 최하 3~4만 명, 최대 6~7만 명의 정원을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기장들이다. 경기장을 들어서면 콜로세움이 바로 떠오르게 된다. 경기장 어느 위치든 검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도록 매우 정제된 경기장 설계를 자랑한다.


내가 봤던 경기는 문자 그대로 한 석도 빠짐없이 매진이었다. 소위 잘 나가는 팀, 구장만이 아니라 모든 팀들이 매진이었다, 1만 명 수준의 비교적 작은 경기장은 물론 7만에 이르는 경기장까지도.


특이할 만한 것은 영하권이 되는 그 추운 저녁 시간에 가족 단위, 그것도 3대가 함께 온 관중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아들, 딸이 얇은 하몽 한 겹을 채운 바게트를 나눠 먹으며 가족 모두가 한 몸이 된 듯 연신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선수를 독려하며, 때로는 원정팀을 원색적으로 저주하며(어르신께 여쭤보니 그들만의 허용되는 방법과 수준 안에서). 그러곤 경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깔끔하게 뒷정리하고 3대가 즐거이 귀가한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려면 경기장으로 올 때와는 달리 일시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거대한 콩나물시루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가며 버스 타러, 지하철 타러 간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조용히, 질서 있게. 지하철 안에서 처음 본 사람과 오늘의 경기내용에 대해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국에서는 오늘과 같이 매년 말일이 되면 종각에서 종을 울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한 해를 즐거이 맞이하게 된다. 또한 새해를 특별하게 맞이하고픈 이들에게는 각지의 산과 바다로 새해의 첫 일출을 멋지게 보고자 한다.

2024년 12월은 진정 참담하기 그지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별안간 주의를 주기 위해 국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전체를 위험으로 내몰았고, 크고 작은 우리 이웃과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하루하루는 물론,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일상이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호주 현지의 일상은 고국의 현재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 호주는 과거 개척지로서 기존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배제 등 다양한 정치적 어려움이 존재했으나 지난 100여 년 동안 대화와 타협, 이면의 투쟁을 통해 원주민은 물론 여성의 투표권 확보, 확대에까지 이르렀고, 시대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헌법이 개정되어 왔다.

이 덕분인지 오늘 2025년을 맞는 날을 기념해 호주 중심 주변 여러 곳에서 불꽃축제가 열렸다. 캔버라에 와서 이 처럼 많은 이들이 몰려있는 것은 처음 본다. 그럼에도 매우 질서 정연했고,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다. 모든 이들이 소수의 경찰을 위시한 공권력의 지휘에 잘 따랐고, 도보로 10여분 걸리는 주차장 외에는 어느 누구도 교통을 혼잡하게 할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고, 간이 공중보건설비 역시 충분히 설치되어 부족함이나 불편함 없이 행사가 잘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다.


잔디밭 주변은 마치 세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 제각각 자신들의 음식과 말을 즐겼다. 친구, 연인, 아들딸아빠엄마가 모인 소규모 가족, 할아버지할머니아빠엄마사촌손자들로 이뤄진 대가족들. 하지만 참사로 온 가족을 일시에 잃는 너무도 큰 상실을 떠안아야 하는 유족이 발생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면 무겁기만 한 마음을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2024년 12월 마지막 밤 호주의 수도, 캔버라의 밤하늘에 울려 퍼진 불꽃을 공유한다.

이 불꽃들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함께 기억했으면 했다.

우리의 일상, 가족의 행복한 시간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어야 할 대상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 스스로 자유와 책임을 잘 이해하고, 행동해야 하며,

공권력은 필요한 만큼, 충분한 만큼 책임감 있게 작동해야 하고,

부족하다면, 시민이 나서 투쟁해야 하고, 획득하고, 강제하고, 주시해야 한다.

크나 큰 즐거움과 행복을 여러 세대가 함께 나누는 세대통합까지.


대한민국은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압축, 고도성장을 단기간에 이뤄냈다.

엄청난 일들을 이뤄낸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만심은 금물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거울을 보며 반성하고, 스스로 보완할 수 있는

대인배 대한민국을 2025년에 기대해 본다.

캔버라의 새해 맞이
캔버라의 새해 맞이
캔버라의 새해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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