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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면 반칙이다”에서

이외수 1~3

by F와 T 공생하기

놀랐다.


고 이외수 선생님은 우연히 접한 덕분에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작가 중의 한 분이었지만 작가세계에서의 비화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류근 시인과의 인연도.


어떤 세계에 있던 ‘다름’은 차별과 조롱, 증오의 대상이 되나 보다.


특히 한국에서 인종차별과 계급 사회의 속성들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차별과 조롱, 증오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외계어로 분류되어야 할 정도이다.

생각과 언어를 다루는 작가의 세계에서 조차 예외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일상에서 ‘다름’은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고, ‘호기심’의 원천이다.


호숫가에서, 거리에서, 도서관에서,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이웃들은

나를 환기시켜 주는

신선한 공기와도 같고,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청량한 물과도 같다.


그들은

파란 눈, 갈색눈, 검은 눈, … 을 가졌으며,

검기도, 붉기도

크기도, 작기도

늙기도, 어리기도 하다.


그들은

Aborginal people (원주민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민’이 ‘인’에 비해 경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호주 현지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함),

Australian,

Indian,

Chinese,

Japanese,

Columbian

Laosian

Russian

Ukrainian

Swedean

English

Arabian

Turkish

Nepaleon

Iranian

Pakistanian

Malaysian

Indonesian

Vietnamian

Armenian

Mongolian

Korean


혹은 또 어딘가에서 …


다양성과 수용

아름다운 민주주의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풍경화



이외수 1

아, 나에겐 언제나 내 슬픔을 들어주던 소설가 이외수가 있었다. ‘지음(知音)’이 침묵하는 가을의 예감, 날마다 외롭다.



이외수 2

20~30대 시절엔 소설가 이외수와 친하다는 이유로 욕 많이 먹었다. 소위 ‘문학 한다’는 사람들이 더 극렬하게 욕을 했다. 이외수가 사이비이기 때문에 그와 친한 놈도 사이비라는 식이었다. ‘중앙문단’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문인일수록 이외수를 싫어했다. 이외수를 증오하고 혐오했다. 나도 덩달아서 개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고딩 때 이외수의 ‘들개’를 밤새 읽고 그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겨울나기’,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 청춘이 다 흔들렸다. 그러다가 그의 ‘연예인적 행태’를 ‘여성지들을 통해’ 접하고선 깨끗이 관심을 끊었다. 나 또한 엄숙하고 진지한 문청이었던 것이다. 그랬다가 아주 우연찮게 그를 만난 후 그의 인간성에 빠져서, 문학보다 아름다운 인간에 반해서 그와 술친구가 되었다.


류근은 지리산 토굴에서 술 머슴살이하고 있고,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은 화천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글 머슴살이하고 있을 때 새벽에 실시간으롤 화답시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의 봄을 기다려주었을까. 그 옛날 내가 등록금이 없어서 복학을 못 하고 있을 때 나를 위해 밤새 그림 그려주던 순정 소설가.


“두 점쯤 갖다 팔면 등록금이 될지도 몰라 … .”


내가 어찌 이 소년의 손을 놓을 수 있으랴.



이외수 3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은 칭찬의 달인이었다. 삶에 겁먹고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장점을 부추겨서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이를테면 시를 잃고 해매는 나에게,


“운문을 뛰어넘고 산문을 뛰어넘은 류근의 문장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다. 류근이라는 장르!

류근은 천재다.“


이런 식이었다.

나도 실은 그렇게 생각한다.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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