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면 반칙이다.

인간조건

by F와 T 공생하기

류근


결혼하지 않고 딸 하나 키우는 교수님이 계셨다. 불문학자였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할머니 연세였다. 내가, 맨날 취해서 비틀

비틀 떠벌떠벌 어리버리 헤매면 나를 불러서 책을 한 권씩 주시곤

하셨다. 우리 학과 교수님은 아니셨다. 나를 참 이뻐하신 건가?

혹시 사위?


‘자네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안 읽고 그 나이를 살고 있네.“


내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책을 안 읽었는지 어찌 아시냐고요~.

그런데 진짜 족집게처럼 내가 읽지 않은 책만 내미셨다. 나는 그 때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라든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서나 헤겔의 ‘변증법’

같은 게 훨씬 문학에 이롭다고 생각했다. 책을 받으면 더 기분이 나빠져서

더 더 더, 안 읽게 되더라, 시바.


그런데 어느 가을날, 캠퍼스 잔디밭에 우울히 앉아 있다가 가방 안에

버려두었던 책이 기억이 났다. 그 할머니 교수님이 준 책이었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이었다. 아이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지 일주일 후였다. 닝겐 실격 다음에 닝겐 조건이라니.


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었는데 나는 캠퍼스 잔디밭이 다 어두워질 때까지 그 책을 읽었다. 다 다 다, 읽었다. 다 다 다, 읽었다. 내가 내 나이를 살아야 할 이유를 좀

알겠더라고.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 ‘인간의 조건’을 안 읽으면 그 나이를 제대로 살지 않은 거라고 믿게 되었다. 때가 이르렀으면 때에 맞는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그

할머니 교수님 부음을 듣고 막 울었다. 사흘을 울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의 **『인간 실격』(人間失格, 1948)**은 일본 근대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뇌와 자기 부정, 그리고 인간관계의 소외를 다룬 작품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반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이 소설은 발표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과 공감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품 개요

• 줄거리

주인공 오바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숨기기 위해 어리숙한 ‘익살꾼’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식적인 삶은 결국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고, 알코올, 마약, 여성 문제 등에 빠져들며 점차 자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요조는 자신의 삶을 세 번의 “수기(手記)” 형태로 기록하며, 그를 인간 실격 상태로 이끈 내적·외적 사건들을 고백합니다.

• 주요 사건

1. 어린 시절: 타인에게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익살”로 가면을 쓴 채 살아감.

2. 청년기: 친구와 함께 사람들을 속이거나 타락한 삶을 살며, 자신을 더 깊은 파멸로 몰아넣음.

3. 마지막: 사랑과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하며, 결국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된 존재로 전락.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규정하며,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느낍니다.


주제

1. 인간 소외와 고립: 요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점차 사회에서 소외됩니다.

2. 자기 부정: 주인공은 자신의 삶과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며,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갑니다.

3.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요조의 내면은 인간의 어둠, 부조리, 그리고 구원받고자 하는 희망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문학적 특징

1. 자전적 요소: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삶과 경험(알코올 중독, 여성 문제, 자살 시도 등)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2. 고백체 형식: 소설은 “수기” 형식으로 서술되며, 요조의 고뇌와 자기 파괴를 독자가 직접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3. 어두운 분위기와 상징: 인간의 나약함과 절망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구합니다.


한국에서의 수용


『인간 실격』은 일본 문학 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많이 읽히는 작품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과 사회적 소외에 대한 묘사가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한 인간관계의 고독, 자기 정체성의 혼란 등은 많은 독자들에게 여전히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명언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요조의 고백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이 문장은 요조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그것을 고백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948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간 실격』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스스로의 삶과 깊은 절망을 투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은 인간의 존재와 혁명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선택을 다룬 작품입니다. 중국 1927년 상하이에서의 혁명을 배경으로, 혁명가들의 투쟁과 희생, 그리고 그들 각자가 겪는 인간적 딜레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줄거리


1927년, 중국 상하이는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습니다. 첸(Ch’en)이라는 공산주의 혁명가는 국민당(장제스)과 대립하며 혁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결의를 다집니다. 그는 폭력과 죽음으로 혁명 목표를 이루려 하지만, 혁명의 과정은 점차 실패로 치닫고 동지들마저 희생됩니다.


첸 외에도 다양한 혁명가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사상적 차이, 인간적 약점,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의 고통과 절망이 그려집니다. 이들은 모두 혁명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지만, 혁명의 실패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덧없음을 드러냅니다.


주요 사건

1. 첸의 암살 임무

첸은 혁명의 첫 단계로 적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려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하지만, 혁명을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의 내면 갈등과 결단이 혁명의 잔혹성을 상징합니다.

2. 혁명가들의 배신과 탄압

장제스가 국민당 내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동지들 중 일부는 배신당하거나 사형당하며, 혁명의 이상은 점차 무너져갑니다.

3. 카토브의 희생

혁명 동지 중 한 명인 **카토브(Katov)**는 붙잡혀 처형 위기에 놓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동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선택은 혁명 속에서 인간적인 연민이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4. 클라펠의 탈출

유럽인 상인이자 기회주의자인 **클라펠(Clappique)**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혁명가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혁명의 실패가 확실해지자 상하이를 떠납니다. 그의 행동은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면모를 드러냅니다.

5. 첸의 마지막 선택

첸은 혁명 실패 후 포로로 잡히게 되며, 자신의 신념과 죽음 앞에서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혁명에 바쳤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절감하며 죽음을 맞습니다.


주제와 메시지

1. 혁명과 인간의 한계

혁명이라는 거대한 이상 속에서 개인의 희생과 고뇌를 조명하며, 인간이 사회 변화의 도구로만 존재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2. 폭력과 인간성의 갈등

혁명의 성공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훼손되는 모습을 통해, 혁명의 본질과 그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3. 실존적 고뇌

말로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작품의 특징

• 다층적 캐릭터: 각 인물은 혁명가이자 동시에 불완전한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 실제 역사와 문학적 상징: 중국 혁명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철학적, 실존적 질문을 던집니다.

• 폭력과 죽음의 생생한 묘사: 작품 전반에 걸쳐 폭력과 죽음이 인간 조건을 시험하는 소재로 등장합니다.


『인간의 조건』은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선택과 한계를 조명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처럼 인간 존재의 본질과 고뇌를 탐구하지만, 개인적 고립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인생은 어땠나요라고 묻는다면,


“난 ‘천둥벌거숭이’였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다.

아마도 지금도 그런지 모르고 살고 있을 것이다.“고 말을 할 것 같다.


평생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대학생이던 형의 책상에 놓인 이 책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중학교 3학년인가에 읽어나갔다.

아무것도 기억나지는 않는다.


도대체 자유로부터 왜 도망을 간단 말이지?


유럽생활을 거치며 가정을 꾸리고, 서른을 넘기며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 사고방식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세계지도 중심은 유럽이었고,

시간단위의 엄격한 노동 생산성 관리가 이뤄졌고,

세금과 연금 모두 매우 투명하고, 엄격하게 관리되었으며,

병원에서의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관계는 한국과 완전히 달랐고,

엄청나게 긴 휴가와 시간 자체가 아닌 만들어낸 ‘가치‘ 중심의 사고를 하였으며,

인간의 삶이 중심에 있는 사회로 여겨졌다.

(모든 사회는 각 사회 나름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특정 시점에서의 어려움보다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가치와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히도 귀국해서 다시금 손에 든 것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나는 나의 자유를 감당하는지, 즐기고 있는지, 이제 그만 도망가고 싶은지 …


난 여전히 ‘천둥벌거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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