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같은 무게로
류근
낮술을 마시고 있는데 창밖에 눈발이 흩날렸다. 생각난 듯 시 쓰는 후배가 한마디 했다.
”아, 사랑도 봄눈 같아야 할 텐데요.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는 봄눈처럼 가벼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 .“
빈 잔을 탁,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얀마, 그러니까 니가 아직 여자가 없는 거야. 맨날 녹아버리는 여자밖에 없잖아.”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내 가슴에도 봄눈 같은 사랑에 대한 열망은 흩날리고 있었다. 쌓여서 녹지 않는 사랑은 고통이므로, 만년설 같은 그리움을 가슴에 이고 사는 것은 천형이므로.
사랑아,
오려거든 이제는 부디 봄눈 같은 무게로 내리거라.
우산도 없이 자꾸만 마음이 눈을 맞는다.
갑작스레
사랑의
무게
사람의
마음의
무게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호주에서
아내와 단 둘이 지낸다.
가족,
부모,
형제,
나,
아내,
자식,
친척,
친구,
동료,
이웃,
사회,
…
우산도 없이 내 마음이 눈을 맞아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