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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김밥

by F와 T 공생하기

김밥은 50이 넘은 내게 어릴 적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도 같다.


당시에는 인식도 하지 못했지만

가난했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소풍날이면 여지없이 김밥을 싸주셨던 것 같다.


위로 형이랑, 누나가 소풍을 가면

덩달아 내게도 김밥으로 가득한 도시락을 안겨주셨다.


유복하지 못한 집의 미취학 아동은

요즘 같으면 방치라고 하겠으나

사실 현대문명의 이기와 이기심로부터 충분히 안전한 거리를 유치한 채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닐 수 있는 여유로운 시기이다.

심지어 어깨너머로 아버지, 어머니가 하시는 모든 일을 배우기도 한다.


배꼽시계만큼 정확한 시계는 없다.

형과 누나가 학교를 가고,

난 유치원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있다 해도 갈 형편은 못되었으니

당연지사 푹 자고 일어나 보면

김밥으로 가득한 아침상과 도시락은 내 차지였다.


아침을 즐겁고도 거하게 먹고 나면

이미 동네 아이들 하나둘씩 모여든다.

이미 김밥 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았는지

동네 아이들의 시선은 내 도시락에 가있다.


‘형아야~ 내도 주라.’

넉넉한 내 어머니는

내 도시락은 물론 동네 아이들 것까지

넉넉히 싸두신 결과,

‘아나, 니도, 느그들도 무라.‘

미취학 아동들 서넛은

이렇게 해를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도시락을 까먹으며 놀았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의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시락을 싸줬다.

세상에는 없는 나만의 형형색색 김밥을.

때로는 설탕으로

때로는 초로

때로는 시금치만으로

때로는 당근만으로

때로는 단무지만으로

때로는 평범하게 여러 야채와 어묵, 소시지가 섞인 것으로

때로는 끝 색깔이 다채로운 쌈채소로 싸서

때로는 김 한 장으로

때로는 김 두 장으로.

때로는 라면과 함께

때로는 된장국과 함께

때로는 미역국과 함께

때로는 소박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


호주에는 쌈채소가 쉬 보이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쌈채소로 맵씨 좋은 김밥을 만들어 보리라.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가족들 오손도손 모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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