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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Mar 23. 2020

수시와 정시

보이는 경쟁과 보이지 않는 경쟁

“선생님, 저 수능 준비할래요.”   


 봄이 되어 학생과 상담할 때, 가끔 듣는 말이다. 나름 입시 지도를 6년 이상 겪어 보니까 이 말을 하는 학생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어느 정도 된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못 가고, 그렇다고 수시를 위해서 활동을 고3 때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이러 저래 우리나라 고3 학생들이 참 어렵다.     


 수시와 정시.


 난 정시 세대다. 우리 때는 수시라는 말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11월에 수능 한파를 겪고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참 불만이었던 게 있다. 어떻게 대학을 수능 한 번으로 결정하지라는 생각이다. 나름대로 공부를 제법 하는 지역에 살았지만, 수능으로 인 서울을 하는 학생들의 경우가 드물었다. 또, 고등학교 내내 1등을 하던 친구는 수능 날 설사를 하는 바람에 결국 재수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능이 과연 공정한가를 많이 생각했다. 12년 공부를 한순간에 평가받다니.   

  

 선생님이 되고 몇 년 후부터 대학 입시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의 수시가 한창이었다. 열심히 지도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수시로 거의 대학을 가는 분위기였다. 뜻깊은 경험도 있었다. 입시 지도 첫해,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신의 진로를 위해 다양한 학교 활동을 한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수시 전형에 대한 지도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였다면 수시와 정시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같은 활동을 하고 성적도 비슷한 성실한 두 학생이 같은 대학의 같은 학과를 수시 모집에 지웠했다. 둘은 아주 친한 친구여서, 같이 대학을 다니면 좋겠다는 말을 원서 접수 전부터 했고, 심지어 면접 준비도 같이했다. 난 속으로 ‘둘이 같이 붙던가, 아니면 같이 떨어지겠지. 너무 둘이 똑같아서.’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하지만 서류 결과 발표날, 난 눈을 의심했다. 한 명은 붙고 다른 한 명은 떨어졌다. 왜. 난 한동안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를 궁금해했고, 심지어 대학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아마 이 시기부터였을 것이다. 인터넷에 수시는 공정하지 못하고, 정시가 공정하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 때가. 나도 수시가 공정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12년 공부를 한 번에 평가하는 정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였다. 근데 사람들의 댓글은 내 생각과 조금 달랐다.      


 공정하지 못한 수시를 개선하자는 말보다, 정시를 보고 수시를 없애자는 글이 많았다. 물론, 각자의 주장을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맞는 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수시와 정시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수시와 정시.


 보이는 경쟁과 보이지 않는 경쟁.


 똑같은 경쟁인데, 수시는 결국 경쟁의 대상이 옆에 있고, 정시는 옆에 없다. 수시를 쓰다 보면 같은 대학과 학과를 쓰는 학생이 많다. 결국, 경쟁의 대상이 옆에 있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부담스러워했다. 친구가 경쟁상대라는 점을. 하지만 정시는 내 상대가 수시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전국 어딘가에 있다.  결국 내 친구를 경쟁 상대로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나도 수시 세대였다면, 차라리 정시를 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 생각이 올바를까? 이 주제로 친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결국 대학이 문제가 아니고 그 큰 문제가 있는 거죠. 어떤 직업이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학생들이 대학보다는 학과나 적성에 맞게 가겠죠.”      


 난 이 말에 공감했다. 우리가 이런 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거 같다. 나도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을 품었던 거 같다.


 우리는 과거에 인터넷에 농담처럼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라는 급훈으로 올렸다.   과연 이 말이 그냥 웃고 넘어갈 내용이었나 생각해보았다.

 

 의미보다 결과를. 과정보다 성과를. 결국, 경쟁에 길들여진 우리가 어른이 되었고,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이 당연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의 입시 경쟁이 잘 못되었지만 고치려는 노력보다 쉬운 길을 택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책을 읽다 이런 부분을 봤다. 학생이 백일장에 작성한 글이 박웅헌 씨의 '여닯단어'라는 책에 나와있었다. 이 글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늦지 않았다면. 이 글이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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