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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Oct 08. 2021

지더라도 웃을 수 있다면.

요즘에 누릴 수 없는 일들.

 요즘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일상에서 사라진 것들이 많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직 생활을 하면 1년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된다. 매월 일정한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코로나 19가 생겼을 때 당황했던 것 중에 하나는 해야 할 일 중에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서였다. 그중에 하나가 체육대회이다. 

 

 학생들에게 체육대회는 목숨과 같다. 아이들은 체육대회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한다. 여고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체육대회가 중간고사 이후에 있지만 아이들은 체육대회 연습을 시험 전부터 시작했다. 특히 피구 연습을 말이다. 시험 전에도, 시험 날에도, 시험 후에도 아이들 손에는 피구공이 들려 있었다. 30대 이상만 아는 만화인 '피구와 통키'의 주인공을 현실에서 보는 것 같았다. 공부 말고 다른 것에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시험기간에 연습하는 점을 못 마땅해했던 것 같다. 


 요즘 체육대회를 안 하다 보니까 체육 대회가  많이 생각난다. 옛사랑을 문뜩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체육대회에 항상 등장하는 종목은 피구, 축구, 농구, 줄다리기 등이다. 그리고 가장 환호하는 것은 계주 달리기이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가장 싫어했던 종목은 달리기였다. 장거리 달리기는 잘했지만 단거리 달리기는 잘  못했다. 고등학교부터는 제법 하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5명이서 달리면 항상 4~5등이었다. 무엇보다 더 싫었던 점은 달리기 상품을 1~3등만 줬다는 것이다. 난 항상 상을 못 받았다. 그래서 체육대회가 너무 싫었고 당일 날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건강했다.

 오전에 달리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시작 전에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서 안 나가려고 했는데, 달리기 일정이 오후로 변경되어 달리기를 뛰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이 체육 대회의 주인공 같았고, 나는 주변인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교사가 되고, 나와 같은 이유로 체육대회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체육 대회 날마다 교실에 있고 싶어 하고, 운동장에 나가도 구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요즘 들어 체육 대회라는 말이 사라졌다. 학교에선 '대회'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체육의 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왜 우리는 '대회'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대회라고 하니까 꼭 경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우리는 대회라는 이유로 많은 경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점이 나쁜 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 화합할 수 있고,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픈 환자였던 사람이 의사가 되면 환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체육 대회가 힘들었던 사람이 교사가 되니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서로의 순위를 정하고 이기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 같다. 과정을 즐기기 어렵고 결과에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여고에서 체육 대회날 피구 심판을 보았다. 너무 무서웠고 너무 웃은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피구 대회를 하면서 서로 계속 웃었다. 공을 던진 사람이나 맞은 사람이나 계속 웃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피구에 대한 집념이 무서웠지만 점점 재밌어졌다. 연습은 선수처럼 했는데 대회는 개그 콩트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을 허공이나 바닥에 던지고, 공을 주우러 가다가 넘어지고.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선하다. 


 피구 대회처럼에 대회 당일에 서로 웃을 수는 없는 것일까. 체육 대회를 생각할 때마다 아쉬운 점이 있다. 아이들에게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고에서 피구공을 허공에 던지고 서로 웃었던 아이들처럼. 지더라도 또는 못 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어릴 때 달리기를 하기 싫었던 나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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