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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Feb 06. 2020

용서의 의미를 찾는 과정

삶에서 만나는 용서


“용서할 수 없어요.”     

 

 학생의 첫마디였다. 다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 이미 학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메어 있었다. 한참을 울고 물 한 잔을 마셨다. 진정이 됐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을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놀러 나가려고 하면 공부도 못하는 게 어디 나가려고 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없다고. 이렇게 된 게 부모님 때문이라고. 그리고 아빠는 너무 가부장적인 사람이어서 대화도 안 한다고.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용서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용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 이 학생의 부모님도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학생에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니 예전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학원에 다니던 때였다. 전화기를 항상 꺼놨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켜놨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저편에 응급차 소리도 들렸다.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지만 난 이미 응급차에 타서 아빠를 보고 있었다.


 가벼운 수술이었다. 특별한 일이 생기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하지만 동네 병원에서 한 수술이 잘못돼서 패혈증 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수술하려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들은 것 같다.

 다급한 병원 안의 상황. 분주한 응급실의 여러 사람들. 하지만 난 의외로 차분했다.


 사실 아무렇지 않았다. 감정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아빠 모습이 싫었다. 항상 술을 드시고 화내는 모습을 보기 싫었고,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 참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의 말처럼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다. 사춘기가 든 다음부터는 아빠랑 어느 대화도 하지 않았다.


 용서. 응급차 안에서 아빠 모습을 보고 계속 이 단어가 떠올랐다. 갑자기 왜 생각났을까. 아마 내가 용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게 바로 응급차 안에서 일 것이다.

 응급차 뒷자리에는 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가 타고 가고 있었다. 아직 아빠는 의식이 있었다. 엄마는 한참을 우셨다. 하지만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갑자기 아빠가 힘겹게 산소마스크를 빼고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엄마가 들리지 않게 나한테만 아주 작게 말했다. 뭔가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 하셨다.     


 “아빠가 생명보험을 들었어. 아빠가 죽으면 보험료 타서 엄마 잘 모시고 살아.”     


  죽음. 죽음이라는 말에 갑자기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감정이 없던 마음에 커다란 송곳이 들어온 거 같았다.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너무 나서 아빠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아빠가 누워 있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용서라는 말을 이때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용서라는 단어와 같이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내 뒤를 잡아준 사람. 농구공을 가지고 농구 골대에 공을 넣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 중학교에 갔을 때 공부한다고 처음 스탠드를 사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갑자기 이런 장면이 생각났다.

 기도했다. 내가 아빠를 용서할 기회를 달라고. 그동안 모질게 대했던 아빠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가 이루어진 걸까. 다행히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아빠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지셨다. 지금은 아주 건강하시다.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빠와의 대화는 어렵다. 하지만 아빠와 나의 관계가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아빠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엄격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형제들에게 치이고 살았던 아빠. 그런 아빠의 삶을 하나씩 보게 되었다. 아직 용서를 빌거나 한 적은 없다. 그냥 용서를 마음에 묻었다.          


 학생의 말이 끝날 때까지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나고 같이 운동장 산책을 하자고 했다. 내 이야기를 해줄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운동장을 걸었다. 한참을 말하던 아이는 기분이 나아졌다며 교실로 들어갔다.     




 용서는 어떤 단어일까 한참을 고민해봤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참 어려운 단어다. 남을 용서 하는 것. 남에게 용서를 받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용서라는 말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 아닐까. 용서의 의미를 찾는 것도 어쩌면 삶의 여정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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