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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Oct 05. 2021

나답게, 나답지 않게.

 "누가 떠들어?" 

 3월 중순 정도. 엄청 큰 소리를 치고, 처음으로 교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쾅.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고, 아이들의 눈빛은 흔들렸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왜 저러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모든 게 잘 못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왔다. 



 교사 2년 차. 

 난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아이들도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에 자주 놀러 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 시간에도 웃으면 다 같이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분위기가 무겁거나, 권위적 환경을 싫어했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년 차 교사의 이러한 점은 경력 교사에게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회식 자리에서 같은 부서에 있는 한 선배교사가 내가 있는 자리로 합류했다. 술을 한 잔 거하게 마신 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으셨다. 


  "야, 너 반을 이따위로 밖에 관리 못 해?" 

 평소에는 한 없이 인자한 분이 셨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그분의 성격을 아는지 뭐라고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다음에는 좋지 못한 말이 나왔다. 욕도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이었으면 멱살 잡고 '당신이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일침을 가하겠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다. 화가 났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분이 한참 화를 내고 돌아간 뒤 몇몇 분이 와서 차분히 이야기해주셨다. 

 "저분이 술을 드시면 저래." 

 "학기초에 애들한테 화를 내면 1년 동안 편해지니까 그런 말을 한 거야."

 "한 귀로 한 귀로 흘려. 지금도 잘하고 있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내가 뭘 잘 못 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너무 화가 났고 분했다. 


 '관리'

 아이들은 항상 조용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그걸 관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단어가 마음속에 박혔다. 물론 담임교사의 역할이 반을 운영하는 것도 있지만 관리라는 말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이었다면 '아이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2년 차였다. 

 근데 이상하게 난 그걸 넘기지 못했다. 내가 남들과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되지.  역시 2년 차답게 패기를 부렸다.


 '그래 너희들이 좋아하는 관리를 내가 해주마. 나도 화내고 공부만 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라고 속으로 이를 악물고 교실에 간 것이다. 


 교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평소에 웃으며 이야기해주던 사람이 변하면 미쳤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들이 참 착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죄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었고, 한 동안에 내가 나타나면 조용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화를 내던 그 선배 교사는 나를 보면서 반갑게 웃어 주었다. 이러면 인정받았다고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겠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 화를 냈고, 사소한 일에도 애인에게 신경질을 냈다. 난 변해있었다. 딱 한 주정도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그랬는데 난 많이 변해 있었다.  

  뭔가 잘 못 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은사님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선생님들과 너는 다른단다.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을 수는 없지."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이 말씀을 하셨다.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오히려 너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그 모습은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이었다. 단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다시 웃으면서 아이들을 대했다. 무서울 수 있는 상황이다. 웃었다가 화냈다가 다시 웃는. 하지만 착한 아이들은 언제 선생님이 화냈냐는 듯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 선배교사는 나를 다시 싫어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은 아이들에게 적당히 화내고 적당히 웃으면서 대하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은 2년 차 때처럼 아이들에게 더 즐겁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기마다 맞는 행동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차의 모습, 10년 차의 모습, 20년 차의 모습.

 

 나를 혼냈던 그분은 지금의 나와 같은 경력 교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도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 같다. 후배 교사의 안타까운 모습을 바로 잡아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자신의 모습을 2년 차에게 강요한 것은 잘 못된 일인 것 같다. 물론 가끔 그분이랑 통화하면서 '왜 그때 저 혼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어떤 일도 그 분과 다시 친해졌다.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른다.


 3월에 강압적인 분위기로 학급을 잡으면 1년이 편할 수 있다. 그래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답지 않다.


  나답게 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답지 않게 하는 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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