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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Mar 18. 2021

오늘 하루에 위로라는 댓글을 달고 싶다.

  


컴퓨터 마우스를 잡고 인터넷 화면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약간의 땀도 났다. 이번이 3번째다. 아니 3년째다.      

‘이제 발표할 시간인데 왜 안 나오지?’ 하면서 결과를 발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있지만 온종일 마음은 결과 발표에 신경이 가 있었다.      


 3년 동안 해마다 도전한 상이다. 이 상을 받으려면 최근 5년 동안 활동한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해야 한다. 양도 엄청 많지만, 그동안 열심히 한 보상이라는 마음에 서류를 만들고 제출했다. 자료를 만들면서 뿌듯해졌다. 뭐. 나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서류를 모은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상을 못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받는 상이니까 못 받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해왔던 일을 정리한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욕심이 생겼다. 역시 나도 사람이었다. 욕심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2년 동안 최종 순위에 올랐다가 마지막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될 듯 말 듯한 상황이 연출되니 이번에는 내가 받을 순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사실 상금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금으로 뭐 하면 좋을지 서류를 제출하면서 상상했었다.     


 “이번에는 네가 받을 순서일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이번에는 내가 당연히 받을 거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몇 년 동안 받은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최종 순위에 올라가서 떨어진 사람들은 다음 해에 받는 것을 보았다. 물론 나는 2년간 못 받았지만 설마 3년일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 사전에 공개된 다른 분들의 업적을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받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컴퓨터 화면을 켜다가 꺼다가, 마우스를 움직였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답답하고 초조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화장실이나 다녀오려고 교무실을 나왔는데 한 학생이 교무실 벽에 머리를 대고 울고 있었다.      

 “선생님 이번 대학도 떨어졌어요.”


 교무실 앞에 한 학생이 울고 있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었더니 울음을 멈추고 처음 한 말이 이 말이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한다. 난 선생이니까. 하지만 불합격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불합격에 대해 말하면 곧 있을 내 결과도 불합격일 것 같아서다. 학생과 대화를 편안하게 해야 하는 데 내가 초조할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 ‘나도 선생이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었다.     


 아주 잠깐 속으로 후회를 하고 학생을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난 괜찮아라는 생각.      


 학생이 나한테 대학이 안 되었다고 말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이 학생의 추천 교사이기 때문이다. 3년 동안 같이 지내며 여러 활동을 봐주었고 함께 보냈기에 나한테 대학 결과를 말한 것이다. 물론 내가 아니어도 그 상황이면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도 말했을 것이다. 일단 추천 교사라서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니었어도 했겠지만.     


 교사는 의도하지 않지만, 타인을 상담할 때가 상당히 많다. 학생의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정말 다양하다. 심지어 아침에 못 일어나서 아침밥을 못 먹는 일에 대해 상담을 하기도 한다. 성인 되면 큰 고민이 생길 때, 친구나 가족에게 상담을 요청하지만, 학생들은 조금 일이 생겨도 바로 주변을 찾는다. 물론 아닌 학생도 있긴 하다.     


 대학을 떨어진 아이에게 뭐라고 말할까 고민이 들었다. 다른 대학이 붙을 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에 지원한 대학이 모두 떨어지면 이 말은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뭘 말해야 할까. 상담 연수를 받을 때 들었던 말은 그냥 공감해주라는 것이다. 그 학생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 말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위로 아닌 공감.


 하지만 난 공감이 아닌 위로를 선택했다. 희망찬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다른 대학이 꼭 붙을 거야.” 


 책임질 수 없지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울고 있는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이도 이 말을 들었을 때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에 뒤에 마음속으로 한 말이 더 있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 붙지 못해서 1년을 늦게 가도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할 경험을 얻게 될 거고, 넌 더 잘될 거야.”라고. 내가 대학을 다 떨어져 재수했을 때, 친한 분이 나에게 했던 말을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교실로 돌아갔다. 뒤의 이야기지만 이 학생은 지원한 대학 중에 딱 한 개만 붙는 짜릿한 결과를 얻었다. 다행이다. 사실 안 되면 불러서 마음속으로 했던 말을 해주려고 했다.  


   

 근데 난 떨어졌다. 자리에 앉아서 결과를 확인할 때, 최종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작년처럼 떨어졌을 때 상심이 크진 않았다. 아마 학생을 위로하면서 이미 떨어진 나를 위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의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주는 일)           


 나에게 얼마나 따듯한 위로를 해주었을까. 타인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 얼마나 위로의 말을 해주었을까. 가끔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대상이 나일 때 있는 것 같다. 위로하는 상담을 많이 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도 많고 다른 사람의 일이나 사건이 실린 기사에 대해 이런저런 댓글도 달지만 정작 자기 일에 대해서는 댓글을 달지 않는다. 온종일 고생하고 힘든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라는 기사 제목이 있다면 이런 댓글을 달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은 더 잘 될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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