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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Oct 18. 2021

가방에서 책을 꺼낼 수 있을까

'가방 안에 있는 책을 조금 꺼낼 수 있을까?'



 아침에 학생들이 등교할 때 관심을 갖고 보는 점이 있다.

 물론 한 모습만 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모습에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 아침 대신 빵을 들고 있는 모습, 스마트폰을 등을 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중에 요즘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가방도 가방이지만 무거운 가방이라고 단정지은 이유는 내가 슬쩍 옆에 가서 가방을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눈으로 봐도 가방이 엄청 크기도 하다. 또 가방이 무거운 지는 아이의 자세가 앞으로 쏠려 있는 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가방을 지탱하기 위해 몸이 앞으로 쏠린 것이다. 

 장난이지만 가끔 친한 아이가 지나 가면 뒤에서 가방을 들어 보기도 한다. 들었다가 놓으면 아이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지만 그 정도 장난까지는 하지 않는다.


 집에서 등교하는 학생이라면 가방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게 이해가 되지만 기숙사가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조금 의외의 모습이다. 보통 학생들은 사물함에 책을 두고 다닌다. 어차피 기숙사는 잠을 자러 가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필요한 모든 책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기숙사가 없으면 책을 다 들고 다녀야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에 기숙사가 없는 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사물함을 이용했다. 하지만 그때도 책을 엄청 많이 들고 다니는 아이는 꼭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은 어디에나 꼭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내 가방은 항상 무거웠다. 책을 학교에 두고 다니면 좋았을 텐데 항상 모든 책을 다 들고 다녔다. 집에서 학교까지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데도 가방에 책을 다 넣고 다녔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학교에 사물함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가방에 모든 책을 다 넣어서 들고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갈 때도 공부할 책을 꼭 넣고 다녔다. 물론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넣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된다. 내 키가 조금 컸으면 좋겠다는 아내에게 내 키가 조금 작은 이유를 설명할 때 핑계 대는 여러 이유 중에 학창 시절 가방 이야기는 꼭 들어간다.


 가방에 책이나 불 필요한 짐을 다 넣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어디 여행을 갈 때나 출장을 갈 때, 필요 없는 짐을 가방에 엄청 많이 넣는다. 그 짐에는 책도 들어간다.  


 


 학생들이 책을 많이 넣고 다니는 이유를 요즘 많이 생각해 봤다. 나도 그랬으니까. 예전에 나는 책이 많이 없으면 불안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사용되는 모든 책을  다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했고, 집에 가서도 그 책을 모두 한 번은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집에 가면 가방을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다. 아이들의 무거운 가방을 볼 때마다 예전의 내 모습과 계속 겹쳐 보인다. 


 불안감. 

 내 마음에는 불안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읽지 않지만 내 가방 안에 있는 책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편안한 마음. 그 마음 때문에 가방에 책을 넣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책을 하나 덜어 놓는 것은 엄청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빼면 불안해지니까 다시 책을 넣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이 있으므로 불안감은 쌓일지도 모른다. 결국 불안한 마음 때문에 가방에 책이 쌓이니까. 

   

 가방에서 들어 있는 모든 책을 덜어 내는 것은 엄청 어려울 것이다. 불안감을 내려놓아야 하니까. 책을 꺼내고 짐을 가볍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방의 물리적인 무게뿐만 아니라 마음의 불안감을 조금 덜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 어깨에 가방을 걸쳐보았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어색했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넣어 보았다. 가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권의 책을 넣었을 때는 '역시 못 들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마음도 가벼워지는 이유는 뭘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우리 아이들의 가방에 책이 줄면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옛날에 누군가 책을 조금만 들고 다녀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키가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내에게 키에 대해서는 다른 핑계를 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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