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답게 하는 말
잽잽. 원투. 원투.
안쓰러운 두 손과 허리 그리고 발이 쉼 없이 움직였다. 사실 너무 아픈데 티를 내고 있지 않다. 한 100번쯤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너무 힘이 들었다. 숨이 턱 밑까지 온다는 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체육관 안에서 같은 동작을 하고 10대 아이들과 나의 동작은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이 나이에 복싱을 왜 하는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요즘 복싱을 배우고 있다. (사실 우리 아내한테는 비밀이다.) 영상도 보고 선생님에게 동작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손발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를 반복해서 생각하게 된다. 체육관을 갈 때마다 재미있지만 왜 굳이 복싱인가를 생각한다.
사실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날 부르더니 복싱부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권유를 했다. 내가 복싱이라니. 야생의 세계에 나를 초대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강한 남자구나 하고 인정받는 것 같았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지하 복싱장에 내려갔다. 하지만 복싱장 안에는 담배 냄새가 났다.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에 있는 무서운 선배들. 그다음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와서 다시 교실로 갔고, 복싱과 나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복싱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허세가 문제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센 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 항상 거짓말처럼 중학교 때 복싱부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지금도 왜 그런 말을 20대 때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몇십 년 후에도 그 거짓말은 항상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복싱을 배운 사람. 그래서 항상 언젠가는 복싱을 배워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늦은 복싱은 이래서 시작되었다. 거짓말을 진실로 바꾸고 싶어서.
항상 나를 움직이는 힘은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여러 번 떨어졌을 때도, 교사가 되는 시험에 떨어졌을 때도 사람들에게 조금씩 거짓말을 했다. 나 대학 다닌다고, 선생님하고 있다고. 그렇게 거짓말들이 쌓이고 쌓여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졌을 때, 그 거짓말을 진실로 바꾸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참 우습기도 하다.
거짓말.
나를 나답게 하는 단어가 하필 거짓말이라니. 조금 거창한 단어였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뭐 어쩌냐. 이런 게 난데. 나답게 하는 게 거짓말이어서 지금도 거짓말을 막 남발한다. 지금도 조금 과장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동화 작가가 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