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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원 Feb 11. 2021

Ep. 8 존버하면 온다더라,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이라는 전시명에 끌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는 두 축 - 겨울과 봄- 으로 이뤄졌는데 겨울의 중심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가 있었다. 세한도의 유래는 이러하다. 명문가의 금수저로 태어나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김정희는 55세에 유배(1840-1848)형에 처해졌다. 그냥 유배도 아니고 유배형 중에서 가장 무거운 제주도 자택감금형. 이상적은 김정희의 추락에도 스승을 대하는 태도에 변함이 없어 귀한 최신 서적들을 꾸준히 구해다 날랐다. 그것도 직구. 이에 김정희는 제자의 한결같음을 추운 계절을 타지 않는 '송백(소나무와 편백나무)'에 빗대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1840) '세한도'라 이름짓고 그에게 선사했다. '세한'은 설 전후의 매서운 추위라니 꼭 이맘 때 찾아오는 추위를 뜻한다.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의 앞뒤로 훗날 소장가의 발문이며 동시대 청나라 문인 16인, 한국 근대인들의 감상들이 붙어 있어 전체 두루마리는 15m에 달하는데 '세한도' 자체는 그림과 글씨를 모두 합쳐도 일미터를 조금 넘는 정도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청나라 문인 16명의 글에 얽힌 이야기였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 연경으로의 출장길에 세한도를 품고 가 그곳의 문인들에게 보이고 후기를 부탁한다. 리플인 셈이다. 그리고 그 리플들을 모아 여전히 귀양 중이던 김정희에게 보여주니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세한도는 1840년에 완성되었는데, 문인들의 글 중에 '1845년 초봄... 쓰다', '1845년 1월 22일 추사의 세한도에 붙여서..'라는 문구들이 보이니 그것만해도 벌써 5년이다. 이상적이 청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제주의 김정희에게 보였을 때는 원저자의 손에서 글과 그림이 떠난 지 몇 년이나 지난 후였을까. 수 년의 시간이 지나 '푸르름이 한겨울을 품고 찬 서리 속에 꿋꿋이 섰네.' 같은 선플을 읽었을 때, 그는 잠시나마 봄을 맞은 것 같았겠지. 



전시회의 봄에 해당하는 파트는 같은 19세기 풍속화 ‘평안감사향연도’가 주축이 되었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평안감사는 조선시대 꿀보직이었고, 그런 자리에 부임하는 날의 환영잔치를 기록했으니 봄 중의 봄을 그린 그림들이다. 세 편의 그림 중 연광정 연회도에서 보이는 기생들의 스웩 넘치는 몸짓도 좋았지만, 내가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월야선유도이다. 

스웩


월야선유도는 낮에 시작한 축하연의 연장으로 한 밤에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성벽에는 횟불을, 대동강에는 관솔불을 밝혀 그야말로 불야성인 평양을 그린 그림이다.  

월야선유도




그림의 중앙에는 평안감사가 기세 좋게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악사들이 흥을 돋군다. 

연회석이 떠나가도록 풍악을 울리거랏! 




그런데 잘 보면 그림의 쩌어어어어쪽 끝에 관솔에 불을 붙여 꾸역꾸역 앞으로 띄어 보내고 있는 배가 보인다. 이 축하연에도 총괄 감독하는 제작자가 있었을 테고, 저 배에 탄 사람들은 무대 스탭 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나보다. 흘려보낸 관솔불이 평안감사가 탄 배에 가 부딪혀도 안되고 너무 뭉쳐있어도 안되고 너무 드문드문 있어도 안 됐을텐데 그건 어떻게 조절을 했을까. 리허설은 해 보면서 유속은 파악해 놓은걸까? 아이가 들고 있는 관솔불이 꺼질 경우를 대비해서 부싯돌은 당연히 챙겨놓았겠지? 배가 뒤집힐 경우도 대비해 놓았겠지? 

지치지 마요, 흑. 


이렇게 그림 중앙이 아닌 한쪽 구석, 무채색의 인물들 앞에 한참이고 감정이입해 서있다가 전시회장을 나섰다. 절기로도 한겨울이지만 나의 글쓰기도 요즘 엄동설한, 매서운 추위 속이다. 괜히 '한겨울 지나 봄오듯'이라는 전시명에 끌렸겠는가. 전시기간이 9주나 연장된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보내고 있나 보다. 

존버하면 온답니다, 봄님. 우리도 지치지 말고 버텨요. 



추신: 중단된 '달리는 이유'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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