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에서 느낀 것들
우리 부부가 작년부터 노력해 오던 일이 마무리가 되고, 때마침 아내가 두 번째 이직에 성공해서 잠깐의 시간이 생겼다.
어디라도 다녀오자! 하고 여행지도 정해놓지 않고 비행기표를 보던 중, 웬걸!! 뉴욕행 비행기값이 이렇게 쌀 줄이야. 우리 둘 다 미국은 처음이기도 해서 큰 고민 없이 이번 여행지는 뉴욕으로 결정했고, 갑자기 계획하게 된 여행에 많은 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떠나게 된 뉴욕이었다.
이 막연한 여행에서 내가 알고 있는 뉴욕은 높은 빌딩들, 센트럴파크, 브로드웨이 뮤지컬, 덤보, 월스트리트가 전부였지만 뉴욕에 이렇게 즐길 것들이 많았던가, 일주일의 시간이 정말 꽉꽉 채워졌고 마지막날까지 걸음수 2만보를 채우도록 뉴욕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우리가 뉴욕에 있었던 일주일 동안의 일기예보는 우리 맘처럼 좋지는 않았는데, 마지막 이틀을 제외하고는 ‘흐림 또는 비’였고, 그 마지막 이틀이 우리에겐 뉴욕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의 전부였다. 6월 뉴욕의 뜨거운 태양을 겪고 나서야 우리가 날씨요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참 야속한 마음이었다.
뉴욕에서 MoMA, the MET 등 미술관, 브로드웨이 뮤지컬 3편, 뉴욕의 야경 그리고 센트럴파크, 덤보, 브루클린 브릿지, 자유의 여신상 등의 명소들을 갔지만, 무엇보다 처음 가보는 뉴욕, 처음 가보는 미국에서 일주일을 지낸 여행자로서의 느낀 것들이 있다.
1.
어느 곳을 여행하던지 한국의 일상을 떠나 비일상이 주는 일탈의 자유를 느끼기 마련인데, 미국에서 느꼈던 자유는 조금 달랐다.
왜냐면 내가 누리는 자유라기 보단 뉴요커들이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일까(?). 자유의 여신의 아래에서 전 세계 어느 곳보다도 자유로운 뉴욕시민들 같았다.
유럽의 어느 공원과 광장에서 느꼈던 평화로운 오후라던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껴지는 해방감이라던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여기는 뭐랄까… 진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개성이 넘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한다. 워낙 특이한 사람이 많은 타임스퀘어는 그렇다 쳐도,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대화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1호선 빌런들이 표준인 것 같이 노래하는 사람, 이상한 소리 내는 사람, 춤추는 사람, 랩 하는 사람…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뉴욕이 여행지이기도 하지만, 주거지이기도 해서일까, 공원에서는 가족들이 나들이 나와서 캐치볼 하는 모습, 목줄 안 한 강아지들이 맘껏 뛰노는 모습, 친구들끼리 나와서 공놀이, 파티, 일광욕, 대마(?) 등등 할거 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자유로워 보이고, 정말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 같았다.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규제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 과해서 되려 자신을 옥죄고 있지는 않을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 때문에 더 소극적이고 자기 할 말 못 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뉴욕사람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가? 아니, 오히려 자그마한 피해를 주게 되면 반사적으로 sorry,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고, 과하게 배려하지 않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는 신경 끄는 모습인 것 같다. 우린 이 작은 나라에서 참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살고 있는 것 같다.
2.
911 memorial museum에 방문했다. 벌써 2001년으로부터 20년도 넘게 흘렀지만, 어릴 적 뉴스에서 보도하던 테러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twin tower가 있었던 자리에 911 memorial pool을 만들어놓았고, 그 지하에 memorial museum을 만들어놓았다. 정말 잘 만들어놓았다. 입장권 가격이 꽤 비싸서, 밖에 있는 memorial pool만 보고 지나갈까 생각하다가도 지금 아니면 못 올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장권을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집중해서 관람했다.
전시는 어떻게 테러를 당했는지 아주 상세히 타임라인대로 보여주고, 구조는 어떻게 했고, 테러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였는지 순서대로 보여준다. 멀리 맨해튼 업타운에서도 보였을 그 커다란 twin tower가 공격받을 때 미국인들이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 생각하게 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피해자들을 클릭하면 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전시관이 있었는데, 한참을 서서 여러 명의 피해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중에는 한국인도 있어서 Kim, Lee, Park… 검색하면서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취미가 있었고, 어디서 일했고, 나이는 어떻고.. 이런 것들을 살펴보았는데, 마음 아프게도 정말 평범했고, 어렸다. 미국에서 태어났던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미국으로 건너갔던지, 맨해튼 무역센터 100층이 넘는 사무실에서 일하던 것을 자랑스러워했을 내 또래의 사람들이어서 마음 아팠고, 이 공간을 참 잘 만들어놓았다고 생각했다.
전시 참관객들은 학생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참 많았다. 테러를 겪지 못했던 학생들은 비행기가 빌딩을 충돌하던 장면을 처음 본 것 같았고, 뉴스로 보던 나처럼 충격 먹었다. 미국은 큰 상처를 얻었고 이것을 잊지 않으려고 정말 공들여 memorial museum을 만든 것 같았다. 그 의도대로 될 것 같기도 했다.
우린 어떤 사건을 기억해야 하고,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생각하면, 가장 끔찍했던 테러의 memorial museum을 생각해야겠다.
3.
부끄럽게도 난 영어를 못한다.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때 인걸 뉴욕에 다녀와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는 호주에 한번 가봤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부끄러웠다. 아마 더 영어 실력이 떨어져서이거나, 그땐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았거나?
아무튼 최근엔 유럽이나 일본정도 여행을 했었으니, 그들도 영어가 네이티브는 아니어서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수단정도로 영어를 했다면, 뉴욕은 정말이지… 말을 하는 것은 둘째치고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내가 없었다면 숙소에만 있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는 부끄러움과 위축된 마음에 거의 모든 소통을 아내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미안), 스스로 그 위축된 마음을 좀 깨보고자 작은 도전으로 아침에 베이글 집에 혼자 가봤다. 북적이는 베이글집에서 차례대로 주문을 하고 내가 주문한 것을 계산대에 가서 말해주면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주문은 뭐 그럭저럭 먹고 싶은 베이글이 있었으니 주문을 하였고, 계산대에서 계산도 하고 영수증도 잊지 않고 달라고 해서 혼자 뿌듯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근데 웬걸 내가 먹은 금액보다 5달러는 비싸게 계산이 되어있는 것을 왜 계산하면서는 알지 못했을까…
영어공부는 항상 지금까지 평생의 숙제였고, 아직도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될 날이 올까? 생각을 하고 있지만, 뉴욕여행은 정말이지 의욕을 활활 태우게 한다. 그 작은 베이글집에서 5달러나 더 주고 맛있게 먹는 동양인이 얼마나 바보 같았을지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