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의 공간을 찾아서 ] - 그 두 번째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3의 공간'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이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저명한 두 학자의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레이 올든버그가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서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회학적 관점, 관계지향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제3의 공간'이다.(이 책은 우리말로 『정겨운 장소에 머물고 싶어라(The Great Good Place)』- 창조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제3의 공간’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다른 하나는 크리스안 미쿤다의 저서 『Brand Lands, Hot Spots & Cool Spaces』에서 서술하고 있는 연출마케팅 관점의 제3의 공간이다. 이 둘의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두 관점의 시작은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말이다.
두 학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올든버그는 사회학자답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단절에 주목한다. 그는 그의 책 제1장 서두에서 "미국인 개개인의 삶을 아우르는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작은 마을(small town)'에 대한 향수가 '마을'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Robert Nisbet가 주장한) 공동체의 추구(quest for community)"이라고 보았던 맥스 러너(Max Lerner, America as a Civilization, 1957)의 글을 인용하면서 "미국사회에서의 공간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며, 미국인들의 삶이 점점 더 예민해지고 파편처럼 흩어지게 되었다고 설파하고, 아직까지 새로운 형태의 통합적인 공동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올든버그는 사람들의 주거 공간인 가정을 제1의 공간, 일을 하는 공간인 직장을 제2의 공간으로 규정하고, 그 다음으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소통의 공간, 작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규정한다. 형식이나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사람들을 만나는 대화와 소통의 공간이 곧 ‘제3의 공간’ 즉, 정겨운 장소라는 것이다. 올든버그가 '제3의 공간'으로 명명한 장소들은 동네의 카페, 커피숍, 서점, 주점, 이발소나 미용실과 같이 동네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그곳에 가면 언제든 가까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쉽게 말하자면 끼리끼리 모이는 본거지(hangout) 같은 곳이다. 자신들만의 장소를 가지고 있고, 그런 곳을 드나들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교적 지능이 발달해 교양이 있고, 또 한편으로 강한 연대감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도도 높다진다고 한다.
올든버그는 매일 저녁 해질 무렵 동네 노인들이 모여드는 작은 우물이 있는 광장(Piazza, 이탈리아), 영국과 아일랜드 마을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는 주점, 프랑스의 카페(Café)나 작은 레스토랑(Bistro), 오스트리아 빈의 커피하우스(Kaffeehaus) 같은 장소가 '대표적인 제3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올든버그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인간미와 정 같은 '사람들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연출이 끼어들 수 없다. '자연스러운 인간 관계' 즉, 교류와 소통이 '제3의 공간'을 지향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올든버그는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연출해 상품을 파는 미국의 쇼핑몰이나 패스트푸드 가게들을 '마케팅 지상주의자들의 지나치게 타산적이고 유치한 문화'라고 대놓고 비난한다. 그런 곳들은 부정적 이질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앞글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공간의 연출'을 강조한다. 제1의 공간인 집마저도 집주인을 드러내는 '연출된 주거 공간'으로 규정하고, 제2의 공간인 직장에서도 '편안한 환경'을 강조한다. 이제는 일터마저도 어느 정도까지는 '연출된 주거 공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는 환경이 조성된 일터가 더 생산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곁들인다. 미쿤다는 1980년대에 들어 감각적 체험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상점이나 식당을 '연출'하고, 미술관을 개조하고, 체험이라는 설렘을 갖게 하는 호텔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이 대중적인 공간을 개인의 공간처럼 느끼기 시작했고, '제3의 공간' 개념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연출된 공간'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활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쿤다는 공간의 개념에 '연출'을 결부시킨다. 사람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이라야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이 올든버그의 제3의 공간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3의 공간이 자연스러워야만 한다는 올든버그의 주장에 '연출'이라는 기법을 동원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올든버그가 극찬했던 '정겨운 장소(Great Good Places)'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월이 바뀌었다.
두 저명한 학자들의 공간 개념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올든버그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능 가운데 '사람들의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주목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인 '공동체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미쿤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에서 느끼는 개인체험'에 천착해 어디든 '집처럼 편안하게' 또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의 가치를 만드는데 주력한다.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그들의 전공,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이 둘의 관점의 합일점은 없을까? 얼핏 보기에는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의 관점은 결국 공간이 가치를 가지는 '기능'에서는 일치한다. 즉, '집처럼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학자들의 관점을 통합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면,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떼어놓을 수 없고, 또 그런 사회적 자본을 다시 현실에서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 사회적 자본을 통해 얻어지는 '개인의 체험'을 구체화할 수 있는 수단(tool)로서 '연출(또는 디자인)'과 '마케팅(또는 스토리)'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고민해야 하는 '제3의 공간'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개인들에게 편안함, 짜릿함, 교육에 보탬이 되는 체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서 누구나 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고민하며 풀어가 보려고 한다.
201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