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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오브라이언 Aug 28. 2019

마음 앓이

우리는 양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나를 앓는다

맹자는 그랬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착한 것'이라고,

갓난아이의 마음이 악하지 않은 것처럼 원래는 우리 모두 그랬다고,

갓난아이의 마음 - 그게 바로 양심이라고.

그런데 사람은 이 양심을 쉽게 잃어버리는데 그걸 찾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맹자보다 50년 뒤에 온 순자는 다시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라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본성에 따르게 내버려두면 악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래서 교화와 예의와 법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이 두 가지 마음이 나에게는 다 있다.

언제나 그렇다.

혼자 있으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되는대로 살게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을 강조했나 보다.


마음이라는 놈,

정말 다스리기 어렵다.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줄 알면,

군자가 되나 보다.


——


우리는 늘 마음을 앓는다. 우리 안에 두 개의 마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본능, 이 두개의 마음은 선과 악, 성과 속, 양심과 비양심,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으로 치부되어 오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의 마음은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성 호르몬과 같아서 어느 한쪽이 전부가 되는 상황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과 본능이 왜 우리 안에 같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은 건 뜻밖에도 성당 미사 시간에 어느 신부님의 강론이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가톨릭 신자들은 왜 죄인처럼 사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그런 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신자들이 대부분 죄의식에 젖어 주눅든 채 살아가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본능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과 육을 다 주셨기 때문에 이성과 본능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성은 우리를 인간답게 하고, 본능은 육신을 돌보는데 필요한 것들을 취하게 하거나 존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본능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므로 뭔가 본능적으로 내게 일어나는 신체적, 감정적 변화까지 모두 죄로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이 신부님 강론의 결론이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데 갑자기 불쾌한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인상을 쓰며 움칫 뒤로 물러섰다고 하자. 본능적으로 취하게 되는 이런 행동은 내 안의 동물적인 본능이 작동해 위험을 감지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한 결과다. 마침 다가오던 상대방은 나의 이런 행동을 보고 무안해하거나 기분이 언짢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본능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 때문이다. 죄는 이성이 개입할 때 성립된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보면 끌리거나 여자들이 젊고 잘 생긴 남자를 보고 끌려 뭔가 성적인 상상을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마음으로 간음’한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없다. 이성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이런저런 일로 얽혀서 ‘죽이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고 해도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것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본능이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종의 ‘방어기제’를 작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순간적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생각하게 되면 죄가 된다. 이성이 개입해 ‘계획’하는 단계가 되어야 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만일 생각이 ‘(이 사람 죽이고 싶은데) 어디 살지? 어떤 길로 다니지?’에 미친다면 살인을 계획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므로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개의 마음은 말하자면 우리 몸안에 항상 함께 존재하는 두 가지 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과 같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 호르몬의 비율에 따라 남성, 여성이 결정되고 심지어는 행동양식까지 다르게 표출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두 마음의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인군자는 그 마음 가운데 본능보다는 이성이 발현되도록 힘을 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본능에 더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삶이 사회와 주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주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 역시 존중받아야 할 그 자신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P.S. :  오래 전 썼던 글을 다시 고쳐쓴다. 요즘들어 부쩍 산란해진 마음을 다시 붙잡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을 앓으면서 내 마음이 좀 더 커지기를 소망한다.




Jay O’b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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