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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오브라이언 Aug 26. 2019

세상 앓이

우리는 세상을 앓으면서 낡아간다...

올여름 날이 유난히 더웠더랬다.


당연히 차가운 음식, 차가운 음료, 에어컨, 선풍기... 주변에 온통 차가운 것들로 채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속도 더부룩한 것이 소화도 잘 안 돼서 늘 몸이 삐걱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변비와 설사가 한 번씩 번갈아 오더니 급기야는 어지럼증까지 겹쳐 그 더운 여름날에 오한으로 이불을 덮고도 온몸이 떨리는 지경까지 겪고 말았다.


하룻밤을 그렇게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여름을 앓고 있는 거구나!’


날이 덥다고 차가운 것만 가까이하다 보니 혈액순환이 제대로 될 리 없고, 당연히 온몸 여기저기에 탈이 생기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워서 식욕이 떨어질 때 더운 음식으로 보양을 했던 옛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비로소 나는 알게 됐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앓는다는 것을. 우리 몸이 세상을 앓기 때문에 점점 낡아져 마침내 소멸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신으로부터 받은 내구연한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그래서 세상을 앓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세상 앓이에 도움을 주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주어진 내구연한을 다 채우고, 이 세상에 내 세상 앓이의 흔적을 남긴 채 그렇게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동병상련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세상을 앓는 동안 다른 사람의 세상 앓이에 해가 될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세상을 앓다가 가야 한다는 것을.



여행을 가면 우리는 또 그 또 다른 세상을 앓는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많이 먹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 다른 세상을 앓는다. 그 앓는 과정에서 열이 오르기도 하고, 긴장감이 정신적 자극을 끌어올려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앓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한 앓음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해진 인격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낡는 과정이 아니라 익어가는 과정이다. 익는다는 것은 낡는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만, 그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낡는 것은 기능을 잃는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익는다는 것은 깊이가 더해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세상을 앓으며 낡아지지만 우리 영혼(정신)은 세상을 앓으며 익어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진 내구연한이 다하게 되는 날, 영혼은 무르익어 최상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어야 하고, 몸은 낡아 작은 바람에도 스러져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고 완전히 소멸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앓고, 먼동이 트는 새벽을 앓고, 가벼운 새소리를 앓고 또 새로운 하루를 앓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 영혼은 이 세상 앓이가 내게 주는 적당한 긴장감과 신선함과 경이로움과 가벼운 통증을 통해 조금 더 익어간다. 다른 사람들의 세상 앓이에 관심을 두고, 그들과 함께하는 세상 앓이도 생각하며, 내가 생각하는 세상 앓이의 즐거움을 나누며 오늘도 내 영혼이 조금 더 익어가게 되길 희망한다.


나보다 2천년 먼저 이 세상을 앓던 이들이 남긴 완숙한 영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고도 경주의 첨성대를 바라보며 말이다.



Jay O’b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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