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Apr 26. 2022

아직도. 매일. 시행착오. 육아

낮잠 이불을 새로 샀다. 5개월 차부터 보낸 어린이집. 뭘 봐야 하는지 뭘 사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사서 보낸 낮잠 이불이었다. 물건을 받고 보니 바닥은 얇닥했고, 이불이라고 온 게 또 너무 테두리가 두꺼웠다. 심지어 이불과 요의 사이즈가 똑같.... 난 대체 뭘 산 거지? 깔개와 이불을 같이 요 삼아 쓰시라며 이불을 하나 더 사서 보낸 지 2년. 아이에게 그 이불은 자기만의 공간이었으리라. 이불을 펴면 와서 냅다 눕는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알아보고 좋은걸 살걸...이라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 어느 날 아이가 또 그렇게 냅따 눕는데... 이불이... 짧다... 머리와 발을 제외하면 이불과 아이 사이에 여유 공간이 5cm이나 될까 말까. 아. 내가 작은 이불을 샀구나... 아이는 이제 90cm 정도의 키였는데 이불은 아마도 1m 남짓이었던 모양. 혹은 더 컸는데 건조기에 돌려서 줄어들었거나. 무튼 더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시 열심히 뒤져보았다. 


처음의 시행착오를 상기하며 일체형으로 큰 걸 골랐는데 와... 비싸다. 이불과 세트인걸 사니까. 마음에 드는 건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뭐 이리 비싸단 말인가. 이불과 요가 지퍼로 연결된걸 사려 했는데 역시 또 비싸다. 심란했다. 고작 아이의 이불 하나가 이렇게 비싸다는 사실과, 그 돈 앞에서 여전히 고민하는 나. 20만 원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좋아하던 아이용품 브랜드에서 B 품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냅다 결제했다. 색과 모양이 예쁜 걸 고르다 보니 베개와 요의 일체형은 골랐으되 언젠가 또 땀범벅이 될 아이에게 인견과 양면으로 된 모델을 골라주지는 못했다. 항상 생각이 짧다. 세일가로 산거라 당연히 환불 불가. 4만 원 더 주고 그냥 인견이 있는 걸 샀어야 했나 후회했다. 한겨울에도 수면조끼 따위는 입지 않는, 겨울에도 인견 패드 깔고 자는 베이비인데... 이쁘니까 괜찮다 그렇게 넘겼다. 어린이집은 그리 덥지 않다. 아이들을 위해 한여름에 에어컨을 잘 틀어주니까. 괜찮을 거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해!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었던 건 자의지가 생기기 전의 여행이 전부였기 때문. 잠시 울면 카시트에서 빼서 달래고 다시 꼽는 게 가능했던 시절이 더 이상 아니다. 이 음악은 싫다. 저 음악은 좋다. 간식 달라. 무슨 간식 있냐. 그 간식 말고 다른 간식 달라. 요구가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유난히 말 배우는 속도가 빠른 아이긴 했지만, 30개월에 이렇게 선명한 언어를 사용하게 될 줄 몰랐다.


여행지까지 가는 길에도 이동시간이 길어서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있었지만,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차로 이동하는 게 태반이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차에 탔지만 아이는 늘 예상 밖의 요구를 한다. 심지어 신나게 놀고, 저녁에 샤워를 좀 길게 했는데 아이가 그로 인해 몸에 열이 확 올라온 모양. 찬바람 맞고 놀다가 뜨신물로 목욕하니 그게 독이었던 듯했다. 아이는 살이 다 비칠 정도로 세상 얇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에 연신 땀이 났다. 그리고 급기야 새벽 1시 반에 땀을 너무 흘린 나머지 잠에서 깨버렸.... 울고 짜증 내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가 이불을 들고 비교적 찬 바닥에 내려와 자기 시작하니 그제사 잠을 청한다. 중간에 또 깨서 울먹이길래 아이를 살피니 베개가 흠뻑 젖어있다. 아직도 몸에서 열이 쭉쭉 올라오는 거다. 5시가 돼서야 진정한 숙면에 들어서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와중에. 나는. 해외여행을 꿈꿨다....


그랬다. 임신하고 후쿠오카 한번 다녀온이후에 해외여행이 끊겼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기분을 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든 동선이 막혔고 우리도 무서워 2년 내내 숨죽이며 살았다. 이제 슬슬 움직일 수 있는 시점이 되니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진 것이다. 심지어 임신인지 모르고 초기에 방콕을 끊어놨다가 너무 초기라 포기했던 적이 있는지라. 방콕도 가고 싶어 졌다. 여행하는 차 안에서 방콕을 갈까 아이가 좋아할 괌을 갈까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녔는데. 새벽에 땀범벅이 되어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났다. 


우리는 도시 여행을 좋아한다.

이 아이는 동물을 좋아한다. 

도시에는 동물이 없다. 바다도 없다. 

아이가 7~8세는 되어야 도시 여행이 가능하다. 

도시 여행을 아이가 좋아할 리가 없다. 

자차도 없는 방콕에서 아이는 지칠게 분명하다. 

렌트를 한다 한들 그 교통지옥 방콕을 굳이 돈 들여 경험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아이와의 방콕 여행은 불가능하다. 


그랬다. 아이와의 도시 여행은 어불성설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느긋한 여행을 즐기는 커플이지만, 아이는 우리의 기대와 예상보다 더 역동적이다. 이번 강원도 여행은 아이의 성향과 취향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여행이지만 이런 여행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심지어 코로나 예방접종을 맞지 않아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자가격리를 피할 수가 없는데 아이만 자가격리도 불가능하지 않나. 


접었다. 최소한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접었다. 아니 아이와 함께하는 도시 여행은 접었다. 갈 거면 괌이고, 그렇다 해도 백신 접종에 대한 이슈는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 욕심인지 절감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으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아이는 모래를 좋아하지만 모래가 발가락에 닿는 느낌은 싫어하고, 최애는 언제나 동물이며, 이제 더 이상 바다에 가려면 카시트를 잘해야 한다는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이제 육아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배울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원을 싫어하지만 좋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