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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15. 2022

엄마가 갈게!

독박 육아에 최고의 응원군은 엄마였다

코로나19 조금씩 일상화되고,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제교류 관련 업무들을 주로 해오던 황서방의  해외출장이 결정되었다. 2  만에 나가는 해외출장. 설레보였다. 일이 많았고  몰려서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분명 좋아했다. 힘들다 징징거렸지만 활기가 생겼다.


남편의 출장길은 늘 험난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간다고 다 베를린이나 파리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들어본 적 없었던 험난한 도시에 가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칠레처럼 직항 편이 드문 나라나 미얀마처럼 현지 상황이 뭔가 빡세 보이는 나라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오만은 차라리 나이스 한 편에 가까울 정도. 이번에 잡힌 출장도 만만치 않았다. 라트비아 1주일, 중남미 3개국 2주일.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그나마 얼마 없던 항공편은 축소되었고 축소된 항공편에 전 세계가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겨우겨우 스케줄이 잡혔고 바삐 해외 출장은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심란함은 그 고단한 일정을 뚫고 해외에 코로나 걱정 없이 안전하게 돌아올 신랑에 대한 것과 함께, 2개의 출장을 합해 3주간의 육아 공백을 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가 있었다. 엄마랑 통화하면서 엄마에게 출장 소식을 알렸다. 완곡한 SOS였다.


시간 되면 가볼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좀 겁이 났다. 그리고 첫 출장을 하루 앞둔 바로 지난 토요일. 내일 올 거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갈게'라고 답했다. 휴. 살았다 생각했다.


엄마표 육아는 뭔가 결이 달랐다. 엄마는 대략 6년 이상 베이비시터를 하셨던 경력자였고, 3명의 조카들이 모두 줄줄이 따르는 베이비 껌딱지였다. 희한하게 아이들은 엄마를 따랐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수동 할머니'를 발음하기 힘든 아이는 자신의 태명과 비슷하다 생각했는지 '순순이 할머니'라고 불렀다. 나나 남편이 아이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 것을 느끼면 울면서 하는 말이 늘 같다.


할머니 보고시퍼


나의 본가에서 나의 에너지 소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일단 들어가면 난 눕는다. 시가가 아무리 편해도 며느리가 소파에 벌렁 눕는 꼴은 보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친정에선 다르다. 일단 눕는다. 집은 더 작고 낡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가 최고다. 엄마와 약간의 근황 토크를 마치면 우리 부부는 보통 산보를 나간다. 자유 부부 타임인 셈. 엄마는 나를 대신해 아이에게 밥을 먹이시고 씻기고 머리도 감기고 신나게 놀아주신다. 가끔은 저녁을 먹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차에서 잠든 아이를 그대로 침대에 누이면 완벽한 마무리도 가능하다. 엄마는 아이를 하루 종일도 들고뛰게 할 수 있다. 애는 그저 몸으로 놀아주는 것이라며 아이를 행복하게 하면서도 에너지를 탈탈 털어내는 훌륭한 육아기술의 보유자다.  


무튼. 엄마의 육아능력은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다. 엄마도 체력적으로 힘들 법도 한데 늘 '순순이는 말도 잘 통하고 그래서 쉬워'라고 말한다. 말이 잘... 통... 하지... 듣는데 안 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넌 이렇게 순하고 대하기 쉬운 애를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며 딸의 니즈도 캐치 못하는 센스 없는 엄마'라 구박하셨다.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설명하고 5밤을 자면 아빠는  거다 이야기해주었다. 지금보다도 훨씬  말이 서툴었을 예전 수술 때도 아이에게 병원에 엄마가 가면 며칠간 아빠와 지내야 한다고 설명했고,  알아들었다. 남편은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엄마가 집에 왔다.


일요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1박 2일의 긴 시간은 나에게 공포나 다름이 없었다. 저녁시간 잠깐잠깐 혼자 돌보기는 여러 번 해봤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본 적은 거의 없다.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는 것에는 절대적으로 '콘텐츠'가 중요하다. 남편에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남편은 애를 데리고 시가에 갔다. 나는 운전이 서툴어 아이와 함께 차로 어디 이동할 엄두도 안 나고, 택시로 장거리 이동도 힘들어 보였다. 지하철로 이동도 가능하지만 몇 번 해본 결과 의외로 아이가 많이 지쳐한다. 나에게는 엄마 찬스가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엄마는 두 손 무겁게 집으로 왔다. 아이에게 먹일 생선과 떡, 간식들을 챙겨 오셨고 며칠 고집부려서 머리를 못 감았다는 말에 '엄마가 그렇게 애를 못 꼬셔 어떻게'라며 씻겨서 나오셨다.


차마 염치가 없어 내일까지는 말도 못 꺼내고 있는데 현충일에 만나기로 한 다른 아이 엄마가 아파서 못 나온다고 한다. 엄마에게 그 말을 했더니


엄마가 사실 자고 갈 준비까지 해서 오긴 했어


엉엉엉 엄마밖에 없다. 엄마와 아이와 같이 자고 일어나서 남한산성에 오리고기 먹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4시 반. 강서구에서 남한산성을 오가는 내내 아이는 세상 신나 있는 데로 소리를 질러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루는 집에서 하루는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그렇게 이틀이 다 가있었다. 엄마는 성수동에서 강서구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자고, 우리를 데리고 남한산성까지 갔다가 다시 우리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신 셈이다.  돌아와 아이와 오래간만에 산책을 하자며 동네 나들이를 한 바퀴 하고 카페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가고 싶다는 모든 놀이터를 다 들러 귀가하니 밥도, 약도, 샤워도 다 패스하고 그대로 딥슬립... 이런 아름다운 결말이 어디 있는가.


지난 어린이날도 그랬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게 뻔했고 우리는 어디도 가지 않기로 했다. 마침 엄마가 어디 안 가면 오신다 하셔서 오시라 했다. 종일 아이랑 신나게 놀아주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요 시즌에 애들 챙기랴 부모 챙기랴 정신없고 외로웠던 것 같아.
너도 그럴 거 같아서, 나의 어린이인 널 챙기는 거야.
애 봐주고 그러면 너는 좀 쉴 테니까.


이건 아이나 집을 위해 쓰지 말고 너만을 위해 쓰라며 상품권을 손에 쥐어주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엄마가 언제까지 나의 응원군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엄마만큼 나이를 먹어도 내 아이가 결혼해 아이를 낳기나 할까? 나는 나의 어린이에게 엄마처럼 해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잠깐의 복잡함이 지나가고 오늘 내가 할 말이 떠올라 엄마 아빠가 차에 타시고 나서 외쳤다.


오늘 43살 어린이는 행복했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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