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Jul 10. 2022

길고 긴 출장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왔다. 코로나와 함께

독박육아는 계속 된다

책이 나왔고 겁나 열심히 홍보해도 모자랄 이 판국에. 두손두발 놓고 있는 것은 남편의 부재이다. 남편 없이 혼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해외에 아티스트들을 데려가고 다시 안전하게 데려 오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업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코로나19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그의 일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았아갔다. 2년간 손발이 꽁꽁 묶였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그래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의 작업은 문자그대로 올스톱이었다. 어디든 가고싶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출장은 고사하고 1년에 한번 큰맘 먹고 가는 여행도 다 멈췄으니 말이다.


그런 우리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동력이 바로 아이였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매일매일 함께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출장 일정이 잡혔다. 미친듯이 빡세게.


6월 첫주에 5일간 라트비아

그리고 한주 쉬고 다시 2주간 남미 3개국


쉽지 않을게 자명했다.


항공수요는 터지는데, 공항도 항공사도 비행기도 그 어느것도 정상화 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나라 공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항도 인력감축상태. 원래대로면 직항이 있어여 할 노선이지만 당연히 경유.


출발부터 엉망이었다. 출발에 타야할 비행기가 4시간이나 연착되었다. 경유시간은 3시간뿐인데 출발을 4시간 늦게 한다는 것은 경유가 불가능하다는 뜻. 경유지에서 미친듯이 뛰어가 다음 비행기를 잡았지만 역시 하루 체류하고 다음날 경유에 경유를 더해 완전 새로운 경로로 가야했고 그마저도 23개의 짐 중 19개의 짐만 왔다. 공연을 해야하는데 공연소품과 악기가 안왔다. 짐이 어디있는지도 제대로 몰랐다가 공연단체를 초청한 대사관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수소문해준 덕분에 소재 파악이 가능했다 .2일의 공연 중 하루는 제대로된 공연이 가능했다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걱정은 다음 출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LA를 경유해 과테말라로, 거기서 다시 마이애미로 올라갔다가 다시 에콰도르로, 에콰도르에서 이번엔 파나마시티로 올라갔다가 다시 파라과이로가는 극강의 일정이다. 귀국은 더 드라마틱하다. 파라과이에서 상파울로, 에티오피아를 거쳐 인천이고 이중 2번의 비행이 12시간이다. 마지막 여정은 꼬박 36시간이라 했다.


나는 그 말도안되는 일정 앞에서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감히 입에 올릴수 없었다. 14일 출장 중 비행기를 9번이나 타야하는 일정이다. 나는 엄마에게 주말에나 겨우 SOS하고 버틸 밖에 다른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2주가 드디어 끝났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아이때문에 아니라 내 일때문에 너무너무 바빴는데 야근을 해야하는데 야근을 할 수가 없으니 일은 일대로 쌓였고 스트레스도 함께 쌓였다. 제일 힘든건 외로움이었다. 자잘한 일들을 매순간순간 공유하고 서로의 힘듬을 터놓고 살던 우리가 시차와 등등의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튼 드디어 돌아왔고 나는 너무 기뻤다. 2~3일간의 몸살은 예상하고 있었다. 긴 출장 끝에 하루는 늘 나가 떨어졌었다. 2주의 일정은 처음이었거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으니 당연히 뻗을거라 생각 했다. 생각보다 더 힘들어보였다. 마사지도 해주고 평상시로 돌아오길 기도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입국자는 입국 3일 이내에 PCR 검사를 받아야 했고 오늘 아침. 문자가 왔다.


양성. 확진.


예상치 못했던 단어다. 머리 속에 아예 없던 단어였다. 확진이라니. 나의 남편이 코로나 확진자라니. 이건 나의 플랜에 없던 일이다. 남편이 돌아오면 잠시 몸을 추스리고 엄마 가게가서 고기도 먹고 힘내서 궁금했던 쇼핑몰 팝업 스토어 구경도 가고 다음주엔 궁금했던 탑건도 보러가자 할 참이었다.


모든게 멈췄다. 문자를 받은 남편은 벌떡 일어나 작업실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쓰고 무슨 수술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을 높이 들고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남편을 데리러 공항에 와주신 부모님께 검사 받으시라 연락을 드렸고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후속 조취흘 확인했다. 잠복기가 있을 수 있으니 접촉한지 3일차인 내일 검사하는 것이 피로도를 최소화 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전해들었다. 회사에 알리고 내일부터 재택근무에 돌입하기로 했다. 내일은 아예 휴가를 낼 생각이다. 어차피 아이와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약간 멍타임을 갖고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편은 본격적으로 앓아 누웠다: 그리고 정신 차리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이게 뭐 쓸일이 있겠나 싶었던 소독티슈를 꺼내 남편의 손길이 닿았던 곳곳을 닦았다. 화장실 문고리, 손잡이, 욕실, 주방… 그의 손이 닿고 또 우리의 손이 닿았을 모든 곳을 닦아야 했다. 누웠던 이불과 시트 배개커버를 빼서 세탁기에 돌렸다. 닦으면서도 무슨 병균 취급하는 것같아 미안했고, 더 빨리 조치하지 않아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도 나도 아무 증상이 없고 멀쩡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린이집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아이에게 가르쳐 준 상태였다. 아빠가 혼자 방에 있어야 할 이유를 설명했고, 아이는 수긍했다. 그러나 마스크만 쓰면 되지 외출도 못하는 이유까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다. 아빠방에 가고 싶다 울었고 안된다는말에 또 울었다.


그저 남편은 후유증 없이 지나가기를, 모든게 남편에서 멈추기만을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