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Jul 11. 2022

할머니랑 잘 놀고 올게요

아이가 나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하고 있다

남편의 확진으로 잠시 멍했던 정신을 추스리고 해결에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 9시가 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에서 PCR검사도 가능하다. 아이에게 불시의 코찔림은 너무 미안했기에 가기 전에 미리 이야기 했다. 


아빠가 코로나바이러스 걸린거 알지?
엄마도 코검사 했고 내일 병원가서 또 코검사 해야해.
모르는 선생님한테 코검사 받는것 보다는 소아과 선생님한테 받는게 낫지?
응. 모르는 선생님 무서워. 


비록 10만원의 비용이 들겠지만 아이에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무서운 시도를 하게 해주고 싶어 소아과로 향했다. 월요일이라 사람은 유난히 많았고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아이는 늘 다니는 병원임에도 파티션 안에 드러가 앉아 매우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도 만나고, 어린이집 친구의 동생도 만났지만 아이는 신나서 떠들거나 들뜸 없이 매우 차분하게 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코검사를 진짜 할까 궁금했던걸까? 


드디어 순서가 돌아왔고. 의사선생님은 비장한 차림으로 검사실에 들어오셨다. 신속항원검사를 하고, PCR까지 바로 이어 하신다 했다. 추가비용이 없게 처리해주신덕분에 걱정보다는 경제적 부담을 확 덜어낼 수 있었다. 신속항원 검사 결과 음성. 같이 기다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성이었지만 딱 한 아이가 양성이 나와 안내문을 받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검사가 끝나고 아이가 추가로 먹을 약을 처방받고, 비대면 진료로 약 신청을 한 남편의 약도 받고, 그렇게 병원과 약국을 들러 병원 건물을 탈출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와 할머니 집에 가져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 엄마가 당분간 할머니랑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
엄마는 못가. 아빠랑 있어야 해. 알지? 


내가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챙겼고, 아이에게 장난감과 인형을 고르라 했다. 이거저거 다 가져갈 기세의 아이에게 "이 2가지 중 하나 골라"를 무한 반복하며 추려진 장난감과 인형은 작은 캐리어 한쪽칸을 가득 채웠다. 땀이 많은 아이를 위한 쿨매트와 배개, 좋아하는 책과 간식, 비상약, 체온계 등을 한바탕 챙기고 나니 아이는 칭얼대며 기댔고 점심도 먹기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이미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가기전 한바탕 푸닥거리를 끝낸 터였다. 남편이 있던 방이 문이 좀 빡빡해서 덜닫겨있었던 모양. 온몸을 던져 문을 열었고 열린 틈 사이로 아빠가 보이자 아빠에게 가겠다고 소리지르는 소리에 내가 기겁을 하고 아이를 잡았고 문을 다시 닫았다. 아이는 아빠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다며 내가 다 나았는지 보러가야 한다고 울기 시작했다. 말이 3주이지, 아이의 인생 전체에서 얼마나 긴 기간을 아빠와 떨어져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아빠를 지척에 두고 다시 문을 닫고 살아야 하니 이 아이에게도 고통이었으리라


아빠가 저기 있는데~ 엉엉


아이를 떼내고 간식으로 달래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남편도 나도 아픈 상황보다 그렇게 아빠를 찾으며 우는 아이를 보는 것이 훨씬 더 괴로웠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아이를 안았고. 아이는 계속 아빠를 찾으며 울었다. 아이의 인생에 첫 시련이었으리라.  그렇게 한바탕 울고가서 더 지쳐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는 사이 집을 치우고 남편과 나의 식사를 챙겼다. 맛있는 성게알이 왔는데도 그걸 즐길새 없이 후루룩 넘겨야 했다. 입에선 단데 머리속에선 쓰다. 시부모가 오셨고, 아이의 식사를 해결하고 짐을 챙겨 보냈다. 카시트를 옮기는 것이 너무 큰일이라 어쩔 수 없이 그냥 차에 태우고 아이의 목을 조를게 뻔한 안전벨트 주위를 수건으로 감쌌다. 아이 몸 앞에는 좋아하는 인형을 하나 더 끼워주었고 목에 좀 덜걸리게 최소한의 장치를 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를 차에 태우고 창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며칠밤만 지나면 데리러 갈께. 아빠 다 나으면 같이 데리러갈께 하고 인사를 하는데 너무 순순히 수긍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진짜? 내가 했던 말들을 다 이해했다고? 코로나에 걸리면 안되니까 너를 할머니에게 보낸다는 내 말을 다 이해했단말이야? 그리고 그걸 받아들였어? 너 웃으면서 가는거야? 진짜로?  아이의 짐을 머리속에서 다시 떠올리다 마스크가 빠진걸 생각해내고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스피커폰으로 연결이 되어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통화를 마칠 무렵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할머니랑 잘 지내고 올게요 라고 해야지" 라고 말했다. 


할머니랑 잘 지내고 올게요


대충의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서 걱정하고 계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연락을 돌리고, 회사의 출근이 어찌되나 체크하고 멍타임이다. 처음엔 약간 화도 났다. 아니 한달에 가까운 남편의 부재만으로 난 충분히 힘들었는데, 또 이 난리버거지를 감당해야한다니. 대체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단 말이가. 나는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났는데 또 얼마나 더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멍타임이 끝나고 정신을 다시 바짝 주어담고 나니 그래도 해외에서 안아픈게 어디냐 싶고, 반정부 시위까지하는 나라에 다녀왔는데 무사히 돌아온게 어디냐 싶어졌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아이의 성장을 확인해버렸다. 부쩍 말이 많이 늘어 이제 진짜 대화가 되는구나 싶어진 순간이 많았는데,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아이가 이해하고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내 말을 진짜 다 이해하고 있긴 하는걸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전부. 다. 이해하고 있었다. 32개월, 이제 곧 33개월이 되는 나의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엄마가 자신을 곧 데리러 올거라는 말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분이 많이 묘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이토록 감동을 받은 순간이 또 있었을까?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 중 요즘 가장 행복한 말 중 하나는 "나는 엄마를 무지무지 사랑해"인데, 그때마다 내가 행복한 얼굴을 하면 아이는 "감동 받았어?"라고 물으며 안긴다. 늘 그냥 그말을 하는 내 표정을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로 감동이라는 말을 알고 하는 말일까 의구심이 있었다. 아니었다. 오늘사 확실해졌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로인해 벌어지는 현상까지도 감내하고 있었다. 비록 코검사는 몸을 비틀면 도망치려 했지만 최소한 코검사를 하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한뼘. 아니 두뼘이상 큰 나의 아이로 인해 조금은 평온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추가 감염이나 후유증 없는 남편의 회복이고, 그 다음은 진정한 가족의 상봉이다. 무사히 도착 했다며 온 시모의 문자에는 "종알종알 얘기가 많았다"고 적혀있었다. 빨리 다시 만나 눈을 마추하고 대화하고 싶어졌다. 


엄마는 너와 이야기하고, 니가 원하는 것을 함께 찾아나가고 싶어 



매거진의 이전글 길고 긴 출장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왔다. 코로나와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