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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pr 19. 2022

동물원을 싫어하지만 좋아해

나는 무서워하는 동물을 아이는 좋아한다

엄마가 배속에 나를 안고 있을때, 큰 개에게 허벅지를 물린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가. 난 동물을 무서워한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그림으로 봐서 이쁜 것과 내가 가까이 가고싶은건 매우 다른 문제인데 그냥 가까운것 그 자체가 다 싫다. 엄밀히는 무서워한다. 초등학교때 살던 집 아래층 아주머니는 작은 요크셔 테리어를 키우셨는데 내가 갈때마다 어찌나 맹렬히 짖어대는지 왠만하면 심부름 가고싶지 않은 집 중 하나였다. 개는 관계의 동물인지라. 내가 위축되거나 긴장하면 바로 안다. 저 닝겐이 자기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한번에 알아본다. 그러니 나같은 쫄보는 정말 개들의 밥이 되는셈. 


언젠가 가오픈 중이라 지인들만 와있는 상태인 술집에 간적이 있다. 마침 지인이 큰 개 2마리를 데리고 왔고나만 빼고 다 동물을 좋아했다. 일단은 참고 들어갔는데 하필 6개월령 정도된 허스키와 진도. 와. 덩치는 다컸는데 노는건 상 아가라 온 술집을 헤집고 다니는데 크게 짖는것도 아니고 그냥 돌아다닐뿐인데 나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굳이 나한테 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으니 다들 내 얼굴을 보고 그렇게 까지 무서워하는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 했다. 어느순간 술집이 조용해지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는데 창밖을 보니 개 2마리가 밖에서 산책중이더라. 견주가 긴장하고 있는 나를 봤던 모양이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네 싶었는데 개들이 밖에 나갔어" 


나만 괜찮으면 된다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안괜찮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들 주문한 그 한잔만 마시고 나와야 했다. 그래. 언젠가 그때 그 일행들과 고양이를 키우는 술집도 갔었다. 정확히는 고양이가 있는지 몰랐는데 들어가보니 고양이가 있었고 모두가 신나했다. 위아래로 수직점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그때 처음 알았다. 


"미안한데 나는 더는 못있겠다. 겸사겸사 먼저 갈께" 


고양이가 테이블 위로 점프해 올라올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놀랐고 이제막 자리잡은 술집에서 또 나오게 할수가 없었다. 포유류인 개, 고양이에도 이럴진데 파충류는 말해 뭐해. 사진 아니라 그림만 봐도 기겁을 한다. 


그런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시련은 아이의 취향이었다. 나와는 달리 동물에 대한 아무런 공포도 터부도 없는 남편의 기질을 고대로 물려받은 나의 아이는 동물을 좋아했다. 산책길에 강아지만 보면 냅따 뛰어간다. 강아지는 허락받고 만지는거다 가르치고 또 가르쳤지만...


"허락받고 만질꺼야"


라고 외치며 뛰어간다. 강아지를 향해 돌진 그 자체다. 이제 조금씩 학습이 되어 만질 수 있는 강아지와 그렇지 않은 강아지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뛰어갈때 아이를 보고 반응하고 기다려주는 사람과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가던길을 가는 사람의 차이. 그분들에게는 아이를 기다려야 할 의무가 없으니 너무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래도 간간이 배려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아이는 강아지와 인사하는 법을 차차 배우고 있다. 


여기서 제일 힘든 포인트는 내가 그 순간 옆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위계를 얼마나 빠르게 캐치하는지 이미경험해서 안다. 그러니 내가 물러서면 강아지는 날 무시할게 뻔하고, 그게 아이에게도 전이될수있다. 나의 일행이니까. 그럼 나는 아이가 강아지와 인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강아지가 나에게 다가오거나 혹은 뛰어드는 순간에 버텨야 한다. 내가 물러서면 아이에게 기회는 사라진다. 움찔 움찔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사랑의 힘이라며 놀랐다. 동물이 다가오는데 저만큼 버티다니. 대단하다고.


아쿠아리움도 다녀와봤고 동물원도 다녀와봤다. 둘다 우리 부부가 썩 좋아하는 공간은 아니다. 그런식으로 동물을 가두고 누군가의 볼거리로 만드는 것이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종국엔 인간에게도 좋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아이의 취향 앞에서 무력해졌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도리가 없었다. 아직은 동물이 저 안에 갖혀있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책에서 본 상어가 헤엄치고 있고, 만화로 봤던 사자와 원숭이가 눈앞에 있는데 안좋아할 수가 없는거지.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보고온 동물을 집에 돌아와서도 몇번을 반복해 언급한다. 


아이가 보는 책 중에는 동물이 실제로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도 있다. 나는 뱀을 극혐하는 사람이고 그 책에는 뱀이 내는 소리도 있다. 뱀은 도통 소리가 나지 않으니 그저 움직이는 소리만 들린다.'스네이크 쉬' 아이가 나를 놀리기 위해 내는 소리다. 책에서 나는 그 소리마저도 나는 너무 싫어했고, 아연질색하는 내 모습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가 너 진짜 이따시만한 뱀을 보고도 그소리가 나오나 보자!" 


오판이었다. 나의 아이는 남편과 동물원에서 엄청 큰 파충류들을 줄줄이 보고 나왔고, 너무 좋아해서 다시 들어가 보고왔단다. 실제 동물을 보고도 전혀! 1도! 동요하지 않았고 좋아했단다. 움직이는 것도 봤드냐 했는데 봤단다. 혀도 봤단다. 근데 너무 좋아했다고....동물원에 다녀온 다음날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내 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아이의 첫 마디는 "원숭이 옆에 뱀 있어"였다. 하. 내가 놀라는걸 보고싶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동물원이 싫은 나는 그러너나 말거나 더 더워지기 전에 또 동물원에 가게 될 것 같다. 


대충. 망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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