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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6. 2022

집을 사면 모든게 끝날 줄알았다

월세, 전세, 자가의 과정은 어떤 결론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모든 상황의 끝에 '자가 매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필드를 갈아탄것 뿐이었다. 부동산 시장에 '임차' 시장에서 '자가' 시장으로 필드를 갈아탄 것이고, 그로 인해 과거에 비해 더 자본시장에 더욱 깊게 침투한 셈이 되었다. 나의 다음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더욱 진지한 고민이 되었고, 과거의 나의 선택을 복기하고 그 선택이 가진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게 모든 변수를 다 감안할 요소가 될 수 있는게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변수도 많았다. 빚을 청산할 수 있는 목돈이 생길 뻔 했다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산다 판다 정도를 넘어선 다양한 방법의 부동산 취득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또 그게 무엇이던 자산의 취득이나 매각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때 자본 조달의 방법을 포함한 발생가능한 모든 변수를 감안해 세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공부도 했다. 공부가 부족하면 최소한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료를 내고 자문을 받는 쪽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덜 소진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전문가들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고려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자산시장이 얼어붙었다. 넘처나는 유동성과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충동매수는 이제 더이상 없다. 이런 타이밍에 집을 산 내용을 담은 책을 발매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뭐. 이또한 내 팔자니까.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 보육 문제로 인해 부모님과 시간을 가질 일이 많았고, 요즘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고민의 끝에는 남편의 사무실이 남았다. 기왕이면 재개발이 될 지역에 남편의 사무실을 하나 꾸려주고, 그걸 언젠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은행에서 경매관련한 업무를 오래 해온 아빠의 첫 마디는


아기가 커서 그 공간을 물려받을 수 있을 때,
정책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그러니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 보다는
 지금의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는게 좋을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불과 5년 사이에도 부동산 정책이 10번도 넘게 바뀌었는데, 이제 겨우 3살이 아이가 30살 가까이 되어 자신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때의 정책을 내가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냥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선택하라는 그말이 크게 와닿았다.


일단 재미삼아 경매를 봐
자꾸 보다가 뭔가 차곡차곡 쌓이면 이거다 싶은게 나타날꺼야

그말에 아빠를 다시한번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빠는 경매로 지금의 가게를 매수한 경험이 있다. 은행에서도 대출 신청을 하면 해당 대출의 담보물건을 체크하고 담보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대부계에 꽤 오래 계신 경험도 있었다. 그때 아빠가 월세가 아니라 경매로 가게를 매수한건 신의 한수였다. 부동산 정책이 출렁댈때마다, 경기가 얼어붙을때마다 그때 가게를 안샀으면 벌써 길거리에 나앉았을거라고 말해오곤 했다. 동생도 작은 상가를 경매로 낙찰받아 보유하고 있고,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와중에 그나마 부동산이 있어 그걸 담보로 청약 아파트 계약금을 넣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경매가 누군가의 눈물의 대가 같아서 마음이 좀 힘들어


소소하게 공부를 해본 나의 결론은 경매로 인한 부동산의 취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내보내고 싸우고 그 아픔을 후벼파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선택을 간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아빠도 처음엔 그게 많이 힘들었어
그런데 경매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지점에 있다는 뜻이야
니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 집을 낙찰 받을거고,
누군가의 가슴아픈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니가 하게 되는 것뿐이야


역시 가족은 생각하는 것 마저 비슷한 것인가.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아빠의 말에 약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미 이 집은 세 식구가 살기 충분히 크고 좋은데, 굳이 더 좋은 집으로 가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일으키기 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일하는 남편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집을 더 넓어지게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다.


월세를 내지 않고 차라리 대출금을 갚는 방법으로 사무실을 꾸려나간다면 그래도 조금 더 힘이 날수도 있겠지. 공간이 좀 넓어서 다른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거나 아예 월세를 좀 받는 구조로 갈수 있다면 그또한 좋을테지. 주택이 아닌 부동산을 꾸준히 물색하고 시세도 자주보고, 그러면 저렴하게 나온 물건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고, 그럴때 던질 돈도 필요하고, 행정적인 처리에 대한 공포감도 없애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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