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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l 31. 2022

기저귀 가방, 이제 방황은 끝났다.

아이의 짐이 줄었다. 기저귀 가방 안녕!

육아휴직시 비용을 계산할 때 중요한 비중 중 하나가 분유값과 기저귀 값이었다. 우린 비싼 분유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매일 유업 분유 중 제일 싼 축에 드는 분유를 먹였지만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날 키울 때 그 시절에 한통에 2만 원이나 하던 비싼 분유를 먹였고, 우유도 어디서 구했는지 산양유만 먹였는데 너는 왜 내 외손녀에게 그렇게 싼 분유를 먹이냐는 잔소리도 들었다.


그만큼 기저귀와 분유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이와의 외출은 짐과의 전쟁이다. 잠시 소아과에 가도 분유와 기저귀는 늘 2회분 정도는 챙겼다. 그럼 분유 소분 통, 분유용 물이 담긴 텀블러, 분유통과 여분 젖꼭지, 기저귀, 물티슈, 휴대용 기저귀 갈이대, 여벌 옷을 챙기면 아무리 작게 챙겨도 무조건 가방이 덩치가 커진다. 아이가 자라고 분유를 끊기 위해서는 이유식이 필요하고, 이유식엔 보냉 가방도 필요하고, 물을 챙겨 먹일 땐 물통에 간식도 따로 챙긴다. 결국. 모든 게 짐이다.


그래서 기저귀 가방은 하나같이 크고, 파티션이 있고, 가볍다. 그리고 하나같이 내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선으로 고민하는 것이 명품 기저귀 가방이다. 고야드나 루이뷔통 네버풀 같은 가볍고 큰 가방을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 출산 기념으로 선물 삼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싸도 100만 원이다. 충분히 큰 선물이다.


무튼. 기저귀 가방은 아무리 돌고 돌아도 흡족하게 마음에 드는 것을 사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유모차를 사면서 풋머프랑 기저귀 가방까지 세트로 샀다. 막상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지 않고, 파티션과 충격방지 패드 등으로 인해 의외로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선물 받은 백팩도 있었다. 예쁘고 다 좋았는데 이 또한 묘하게 불편했고 또 기대보다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둘 다 꽤나 비쌌고 매우 속상했다.


그렇게 방황하다 문득 기저귀 가방이 아니라 그냥 내 가방은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볍기로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레스포색이 있었다. 한때 국민 가방으로. 정말 많은 여자들이 들고 다녔단 모델이다. 보기앤 그냥 출퇴근 가방 같지만 맘만 먹으면 웬만한 1박 2일 짐은 너끈히 들어가는 사이즈였다.



내깐 저 모델보다는 좀 무늬가 있지만. 무튼. 두루두루 유용해서 나 또한 하나를 마르고 닳도록 쓰다가 새로 하나 더 사서 바꿔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에코백은 너무 작고, 가볍기로는 저만한 게 없는데 심지어 많이 들어간다. 그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거다.


자잘한 방수되는 파우치를 서너 개를 사서 하나는 기저귀와 물티슈, 하나는 갈아입을 옷, 하나는 분유 용품 등으로 나누어 담고 그걸 가방에 넣었다: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기저귀는 하늘색, 노란색은 옷, 먹거리는 민트색 뭐 이런 식으로. 보냉백을 쓰기 시작하고는 한 귀퉁이에 보냉 가방을 세워 넣고 나머지 짐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채웠다. 잠깐의 이동을 위헌 작은 가방이 필요해도 기본 세팅이 있으니 그냥 저 가방을 들고나갔다. 남편에게 설명도 편했다. 하늘색 가져와. 민트색 가져와.


3~4일의 이동엔 그냥 캐리어가 필요하다. 캐리어 한쪽 가득 아이 기저귀가 채워졌고 나머지 한쪽엔 분유통이 그득그득했다. 요령이 생겨 젖꼭지와 세정제를 가져가 포트에 끓인 물로 살균하고 나머지는 일회용 젖병을 썼고, 맛이 없지만 실온 보관이 가능한 이유식을 사서 버려가며 먹였다. 그럼에도 저 가방은 하루치 식량과 비상용품이 그득한 체 언제나 함께 했다. 심지어 아기띠까지 하는 날이면 정말…


돌이 지나고 분유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짐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았다. 남들은 일부러라도 분유를 더 먹인다는데 난 그냥 쿨하게 끊어버렸다. 아이가 흰 우유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두 돌도 지난 올봄부터 담당 선생님이 바뀌면서 본격 기저귀 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가 똑똑한 편이니 금세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봄부터 차근히 시작하면 뭐 힘들어도 가을까진 떼겠지. 했다. 뭐든 크게 느리지 않은 친구니까. 변기에 소변을 보는 연습을 차차 시작했고, 성공할 때마다 집이 떠나가라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는 노느라 신나서 화장실 간다 소리를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금씩 성공하는 날이 많아졌다. 낮잠시간에도 기저귀를 떼기 시작했다는 말에 다시금 “이 어린이집에 아니면 난 아이를 못 키웠을 거야” 생각했다.


코로나로 시가에 보내야 했을 때도 기저귀를 넉넉히 보내지는 않았다. 간간이 밤에도 기저귀 없이 자는 날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주일의 격리에 기저귀를 10개와 팬티 여러 벌을 보냈다. 그리고 1주일 동안 낮에 놀다 실수를 했을지언정, 밤엔 한 장도 쓰지 않았다. 이제 아이의 짐에는 기저귀와 분유 대신 책과 장난감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주. 여행을 왔다. 시골집에 와서 바람 넣어 쓰는 수영장을 사가 아이를 풀어놓을 심산이었다. 수영을 하루 종일 할 수은 없으니 점심을 먹으러 나오다 순간 당황했다. 아이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나의 가방에 아이를 위한 짐은 여벌 옷과 속옷, 물티슈, 손풍기, 아이용 수저, 손수건, 물통이 다였다.




놀라울 정도로 줄어있었다. 이게 정말 다 챙긴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물티슈도 2개도, 손수건과 기능이 겹친다. 손풍기도 차로 이동할 때는

많이 필요 없고, 아이용 수저도 노파심에 챙긴다. 물통 역시 그냥 생수통으로 마셔도 되고 컵으로도 잘 마신다. 간식도 따로 안 챙기고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서 먹인다. 불과 1년 전에는 마트에서 아이용 떡벙이 없다며 전전긍긍했는데 말이다. 더 이상 간식도 쟁이지 않는디.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면 쟁이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 이제 나는 기저귀 가방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외치는 그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어제의 나는 평소에 쓰던 에코백에 아이의 짐을 채워 나갔다. 애 낳기 전처럼 클러치만 달랑 들고나가는 삶은 아직 무리겠지만 이제 나는 빅백이 아닌 가방을 들 수 있을 만큼 큰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엄마다.


아직은 팔찌는 자신이 없다. 호기롭게 팔찌를 하다가도 아이를 안으며 팔찌 때문에 아프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이고, 목걸이도 아이를 안을 때면 머리카락이 끼곤 한다. 팔찌도 목걸이도 귀걸이도 모든 것이 아직은 아이로 인해 자유롭지는 않지만 최소한 한 가지!!! 큰 가방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여차하면 카드지갑에 핸드폰만 들고 출퇴근하는 나다. 큰 기저귀 가방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웠는지 모른다.


기저귀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방이 작아지기 시작하니, 그래서 기저귀 가방인 건가 싶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가방이 새로 사고 싶어 지는 게 문제긴 하지만. 무튼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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