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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ug 22. 2022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아이와 대화가 되다니


아이가 입을 떼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사고'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울면서 "웃으면서 얘기해"라고 말한다던가, 자기가 신나서 놀다가 부모인 우리를 때리는 상황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하 그런 거야(나쁜 의도가 아니니까 난 잘못한 게 아니야. 화내지 마)"라고 말한다거나, 대체 저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기에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싶은 순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뭔가를 쏟거나 떨어트렸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괜찮아? 안 다쳤어?"이고 그다음에는 사고 친 아이를 향해 "괜찮아. 치우면 돼" 혹은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었나 보다. 아이의 언어가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동싱 '쎄'한 느낌도 든다. 내가 이 아이가 듣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얼마나 많은 언어를 쏟아내 왔던가. 혹 비속어나 과한 표현은 없었는가.


이제는 아이와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의 체력을 탈탈 털어내기 위한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키즈 카페다. 자잘한 장난감이 많이 있는 구조 말고, 대근육 위주의 활용이 많은 곳을 선호한다. 그래서 자주 갔던 곳이 고양에 있는 YMCA 스포츠 어드벤쳐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한 1시간 뛰어놀고 나면 딥슬립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3곳 정도를 더 가본 적이 있는데 연달아 키즈카페를 다녀온 날 아이에게 어디가 더 좋냐 물어보았다.



나 : 오늘 간 큰 놀이터가 좋아? 어제 갔던 데가 좋아?

아이 : 오늘 간 데가 좋아


나 : 그럼 오늘 간 큰 놀이터가 좋아? 할머니랑 갔던 데가 좋아?

아이 :할머니랑 갔던데!


나 : 할머니랑 갔던 곳은 왜 좋아? 언니들이랑 같이 가서 좋아?

아이 :응! 언니 오빠 같이 가서!


나 : 그럼 언니들 없으면 오늘 간 데랑 할머니랑 갔던 큰 놀이터 중 어디가 좋아?

아이 :오늘 간 데가 좋아!


나 : 음. 그럼 엄마 아빠랑 자주 가던 큰 놀이터가 좋아? 아니면 오늘 간 큰 놀이터가 좋아?

아이 :엄마 아빠랑 자주 간 데가 좋아!



이런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해봤는데 이제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질문만 하면 적당한 대답이 나온다. 본인의 의견과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한 리액션. 우린 그걸 대화하고 부른다.


음악 취향도 남다르다. 뽀로로, 핑크퐁, 타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가였다가도 콜드플레이와 마이클 잭슨을 틀어주면 세상 신나 한다. 콜드플레이는 콜드 아저씨로, 마이클 잭슨은 모자 아저씨로 통한다. 아이에게 “나중에 콜드 아저씨 한국 공연 오면 엄마 아빠랑 같이 가자” 했더니 어느 날은 모자 아저씨 공연 보러 가고 싶단다. 뜻하지 않게 “하늘나라”의 존재를 설명해줘야 했다.


차에 타면 “모자 아저씨가 이렇게 하는 거(팔을 쭉 뻗어 몸을 앞으로 숙임) 틀어줘” 혹은 “소파 슝 날아가는 거 틀어줘”라고 말한다. Smooth Criminal과 Black or white를 틀어달란 이야기다. 뮤직 비디오를 하나 보여준 게 이렇게 엄청난 여파가 올 줄 몰랐다. 딸꾹질하는 듯한 창법을 구사하는 노래를 들으면 “모자 아저씨 딸꾹질한다”라고 한다.


콜드 플레이의 음악은 딱 하나 고르지는 않았지만 일단 보컬의 목소리를 구분하고, Viva la Vida도 좋아한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보다가 힙합도 틀어줘 봤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에미넴의 8 mile도 좋아했다. 어디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을 봤는지, 까만 옷 입은 아저씨가 그랬다며 키보드 비슷하게 생긴 장난감 앞에 앉아 한참을 음악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만히 품에 안겨 있다가 불쑥 일어나 “나는 엄마를 무지무지 사랑해”라고 외치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아이는 대체 어떻게 자라려고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엄마 감동받았어?”라고도 물어 크게 웃는 일도 함께 일어나곤 한다. 이제 태어난 지 1000일이 넘은 아이는 친구와의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비록 각자 자기 얘기만 하고 있고, 단어 하나씩 던지면 양쪽 다 아우성이 나오지만 말이다.


아이의 짐이 줄어든 것을 시작으로 아이가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얼마나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지 매일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나의 아이는 물을 쏟고 카시트에 쉬를 하고 씻기 싫다며 때를 부리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뇐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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