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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2. 2022

수백 번 다닌 길에서 길을 잃었다

유모차에게는 모든 길이 다 새롭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있지만) 오피셜리 난 뚜벅이다. 장롱면허라 운전도 무섭고 대중교통이 이렇게 발달한 서울에서는 운전보다 대중교통 이동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차가 아무리 밀려도 지하철은 밀리는 법이 없고, 버스 중앙차선도 많아져서 버스가 택시보다 빠른 경우는 허다하다. 역세권 아파트가 최고라고 부르짖었던 것도 다 서울의 지하철의 힘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아이가 아주 작을 때는 아예 아기띠를 하고 안고 다니면 되니 큰 문제가 안되었다. 무겁게 아이를 안고 다니니 측은한 시선도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커져 이제는 더 이상 안고 다닐 수 없는 길이가 되면서 대중교통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번째 시련은 버스였다. 아이가 아직은 낮잠이 필요하고  낮잠이 아니어도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투명 커버를 집어 써야  때도 있었다. 아이가 버스를 좋아해 버스를 태워 시내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타려던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유모차를 잠시 둘이 끙차 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버스 앞에서 우리는 급하게 아이를 묶은 안전띠를 풀고 나는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맨 채로 아이를 안아야 했고, 남편은 급하게 유모차를 접어야 했다. 기사님이 유모차는 접어야 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할 설명 없이 무조건 접어서 타라고 했다. 다른 승객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버스는 20분에 한대 오는 배차간격이 긴 노선이었기에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차라리 안전상의 이유로 그렇다는 말이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렇게 큰 소리만 오고 갔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로 탑승하는 것과 아이를 아기띠도 없이 안고 있는 것 중 뭐가 더 위험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타야 했다.


그때 탈 수 있았던 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다음 이동 때였다.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며 미리 아기띠도 더 챙기고 아이를 안고 있었고 유모차도 접어두었다. 아뿔싸. 접는 것조차도 허용될 수 없을 줄이야. 지난번과 같은 노선의 버스였는데, 이번엔 접어서도 유모차를 태울 수 없단다. 하. 이 심란함이란…


그렇게 두 번의 상처를 받은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지하철’이었다. 하지만 이동 때마다 걸음걸음 지뢰밭을 지나는 느낌이 들었으니, 전장연의 시위가 왜 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었다. 지하철은 교통약자를 위한 각종 세팅이 되어있다. 아니 그렇다 생각했다. 세팅이 되어있다고 그게 잘 되어있을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로 하는 이동의 첫 번째 허들은 엘리베이터의 위치였다. 서울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나는 지하철을 갈아타는 최적의 위치까지 외운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역 어느 방향이 몇 호선과 연결되는지 자주 다니는 노선은 훤하다. 하지만 우리는 유모차라는 큰 짐과 함께 였고, 유모차는 오직!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사용자가 편한 곳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선은 이동에 지장이 없는 성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하철에 가면, 아니 지하철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한다. 한 번에 내려갈 수는 없다. 지상에서 개찰구가 있는 층으로 한번 내려가고, 그다음에 다시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개찰구를 찾아야 한다. 그나마 사용인구가 많은 환승역이나 최근에 생긴 지하철에는 넓은 개찰구가 있지만 아직도 2호선 언저리에는 승무원에게 연락해야 열리는 별도의 출입구들이 수없이 많다. 그마저도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다. 승무원에게 찾아가 열어달라 부탁하고 열어주어야 하던 것에서 승무원 호출이 가능한 구조로 바뀐 것.


그렇게 개찰구를 통과하면 다음 미션은 다시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이다. 더러는 개찰구를 잘못 들어가면 다시 나와 엘리베이터와 연결이 가능한 개찰구를 찾아 다시 들어가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절차와 과정을 뚫고 탑승을…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너무 넓어서 유모차 바퀴가 쑥 빠져버릴 정도인 경우도 많았다. 오래된 역일수록 그럴 확률은 더 높아진다.


역경과 난관을 뚫고 유모차를 태우면 나는 세상 죄인이 된다. 출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지하철은 늘 붐볐고 아이와 유모차를 안전하게 붙잡고 있을 공간은 확보되어있지 않았다. 노약자 석 언저리가 그나마 사람의 출입이 덜 빈번해 귀퉁이를 향해 가곤 하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눈치는 보였고, 우린 혹여 아이가 신나서 다리를 흔들다 누구와 부딪히지는 않는지, 답답해서 소리 지르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나마 한 번에 이동하는 루트면 이 과정을 거꾸로 반복하는 선에서 역경이 끝나지만, 갈아타면 새로운 고난의 여정이 시작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갈아타는 동선에 ‘엘리베이터’로 한 번에 이어지지 않은 경우는 부지기수고, 지하철 안에서 열차와 열차 사이를 이어주는 엘리베이터를 찾는 일이란 정말 버거운 것이었다.


아마 5호선에서 2호선으로 나가는 길에서였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나에게 필요한 길인지 알지 못해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별로 눌러보고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던 적도 있고, 결국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개찰구를 나가 다시 들어온 적도 있다. 9호선에서 3호선을 갈아탈 때는 아예 표기를 찾기도 어려워서 유모차가 나가는 개찰구 앞에 쪼그려 서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나가서 다른 개찰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역무원 분은 미안해하시며 열어주셨고, 다행히 다른 역무원분이 들어가야 하는 개찰구 쪽에 계셔서 부탁해 들어갔다.


흔들리는 열차에서 아이가 답답해하며 안아달라고 보채는 순간은 이 모든 역경과 고난의 여정이 끝나고 자리 잡고 앉은 다음의 일이다. 계속 움직이다 멈추니 답답해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 아이와의 싸움은 편한 축에 든다. 지하철로 어렵게 이동하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문자 그대로 녹다운. 뭐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의지가 없어진다.


내가 이 2호선을, 3호선을, 5호선을, 9호선을 얼마나 수도 없이 다녔단 말인가. 최소한 20년 이상을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누볐다. 수백 수천번을 탔을 지하철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순간들도 또 그렇게 지나가게 될 것이다. 아이의 짐이 줄어드는 매직을 경험했던 것처럼. 하지만 교통약자석에 앉은 6세 남짓의 어린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 빈자리를 차지하던 할머니를 보면서 지하철과 가까워지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또한 만약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 아니었다면?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지역이었다면? 사실 없었을 호사스러운 고민일 수 있다. 서울이기에, 대중교통수단이 잘 발달한 지역이기에, 아이와 함께 다니고 볼 곳이 많은 지역이기에 해보았단 도전이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이었다면 혼자서 아이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시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일하는 차와 아이를 데리고 다닐 차 2대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출산율 0명대 시대. 우리는 과연 아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다시 물어야 한다. 돈을 바라는게 아니다. 당장 한두해 지원금이 나온다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에게는 아이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시스템의 운영에 기꺼이 동참하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당신들은 그런 준비를 하고 아이를 낳으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시스템이 비단 아이에게만 의미있는 것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동약자들에게 유효한 것을 꾸준히 고민할 필요는 없는가. 자문해봐야 할 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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