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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y 06. 2022

임신한 동료에게 빌려준 방석이 돌아왔다

동료들이 떠나고 있다


임신기간 내내 내 몸을 받쳐준 실리콘 방석이 있다. 점점 무거워지는 골반을 그 방석 없이 버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 없이 살아보니 알겠더라. 직장동료의 임신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그녀에게 나의 방석을 디밀었다.


이거 몸이 무거워질수록 도움이 될 거야.


외근을 다녀왔고 퇴근시간이 임박해 끝나서 직퇴를 했다. 그리고 출근한 오늘. 내 자리에는 몇 달간 그의 몸을 지탱해주었을 그 실리콘 방석은 내 자리 내 의자에 돌아와 있었다. 퇴사를 한 것이다. 계약직이었고, 계약기간이 곧 만료될 예정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휴직 신청을 하면 한 1년 정도는 출산휴직 수당과 육아휴직 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어차피 돌아와서 정규직으로 재계약을 할 계획이 없을 거라면 굳이 남을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선례는 이미 예전에 나도 보아 온바, 그게 속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다른 강단으로 일을 하는 친구였고 그 친구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계약직의 끝은 퇴사나 정규직 2가지뿐이고 신규 채용은 할지언정 계약직을 위해 1년간 자리를 비워둘 회사는 없다. 그렇게 나의 방석은 내 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떠나고, 그 빈자리에 덩그러니 놓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


최근 우리 회사에는 채용 공고가 부쩍 자주 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이 나가고 또 새 사람이 들어왔다. 계약 만료로 퇴사, 계약 만료는 아직 아니지만 어차피 연장이 안될 거라 12월에 맞춰서 퇴사, 많이 힘들어하는데 보직변경의 가능성도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없는 걸 확인한 동료의 퇴사, 이직.. 사유는 다 다르지만 그 끝은 같다. 이곳을 떠나는 것. 어떤 조직이건 우리처럼 작은 조직이라면 더더욱 채용공고가 자주 나오는 상황에 대해 좋아할 리가 없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탈이 잦은 회사, 그러니 좋지 않은 회사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조직이 규모가 크다면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조직 안에서 어떻게든 업무를 분배하고 채용의 텀을 두겠지만 우리는 그러기에도 너무 작은 회사다.


이직으로 인해 회사에 통보하고 1주일 만에 떠나는 친구에게 쏟아지는 원망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직할 회사에서 당장 내일 나오라고 하면 그걸 못한다 말할 수 있는 구직자가 몇이나 될까? 다음 주에 나오지 못하면 너의 기회는 박탈된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한 달 후에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게 왜 개인의 의지라 말하는가. 이 회사에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모른다. 심지어 휴직기간에도 새로운 사람은 돌아왔고 또 떠났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이 사람은 왜 이곳을 그렇게 짧게 있다가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고민해야 한다. 계약직이건 정규직이건 누군가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떠나보내면서 원망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혹 개인의 비전 이상의 아쉬움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대가 바뀌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지 않다는 말로 때우면 안 된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조직도 바뀌어야 하고 조직원들도 바뀌어야 하며 당연히 그런 그들을 고용하는 이들의 시선과 입장도 바뀌어야 한다. 2014년 입사 때 그런 말을 들었다.

이 회사에 들어오면 시집들을 잘 가


그 말은 단순히 이 회사가 터가 좋아 시집을 잘 간다 뭐 이런 뜻이 아니라, 시집을 잘 가서 회사 다닐 필요가 없으니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2015년 이전엔 육아휴직자도 단 한 명도 없었던 회사다. 1994년 시작한 회사가 2015년이 되도록 그렇게 많은 여직원들이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왜 결혼을 하고 이곳을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시작은 무엇인지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차피 아이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해 그 어떤 배려도 없을 회사에서 굳이 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2015년 3년 임기로 새로운 협회장이 취임하시면서 회사에 방문해했던 첫인사가 그거였다.


여기는 육아휴직 잘 챙겨주지?


육아휴직. 마침 임신한 직원이 있었고, 우리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자를 배출하게 된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3개월, 출산 3개월에 육아휴직 1, 그리고 출산 3개월에 휴직 1 + 임신 초기와 말기 단축근무,  6세의 어린이를 가진 엄마의 육아휴직까지 나의 휴직 전까지 고작 4명의 육아휴직자가 배출된 28  비영리 사단법인에 나는 근무 중이다. 2015 부임하신  협회장은 임기를 마치고  후에 이런저런 문제들로 이슈가 되었고, 현재는 여러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협회장님의 모기업에서 당시에 근무한 직원들이 탄원서에 서명을 해줄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세상에 기여한 바가 있으니  기여에 대해 조금은 인정해달라는 내용이었으리라. 나는 고민 없이 사인을 했다. 사무실  방문에 했던  첫인사가 회사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경제인으로서 과오가 있는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거침없이 탄원서에 서명할  있었던 것은 그날의  인사가 우리 회사와 나의 인생에 지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탕비실에는 퇴사자가 남기고 간 선물인 골판지로 만든 귀여운 간식 자판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당연히 퇴사하면 그래야 하는 것처럼 퇴사 선물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듯하다. 우리는 또 간식을 뜯어먹으며 하루를 보낼 거고.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다음 주는 되어야 채워질 빈자리는 좀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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