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Aug 15. 2024

1주일만 버티면 휴직이다

내 허물을 돌아보는 시간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날이 너무 더워지고 몸은 무거워졌다. 사무은 50년은 족히 된 낡은 건물이었고, 에어컨은 사무실 전체를 고르게 시원하게 해주지 못한다. 자리에 따로 켜둔 작은 선풍기를 수시로 껐다 켜가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7월 20일 휴직을 목표로 4~6월 정신없이 달렸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폭풍 같은 하루였다”라고 말하곤 했다. 매일같이 최소 두어 시간은 야근을 해야 했고 7월이 되면 그래도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계산 착오였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회사 일은 쉼 없이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다 끝났다 생각했던 사업에  크고 작은 이슈가 이어졌다. 이건 다 정리했어야 했는데, 하는 일에 변수가 생기니 정작 해야 할 일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정리를 하고 뚜껑을 덮어도 시원치 않을 것을, 끊임없이 다시 열어보고 또 뒤집어야 했으니 인수인계 자료 작성도 할 시간이 없었다. 인수인계도 사업 하나당 2~3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건 인수인계 자료가 잘 정리되었을 때 일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있으면 정리를 위해 또다시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내가 없는 사이 누군가가 내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사건사고들이 휴직하는 그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인수인계는 제대로 한 걸까 놓친 건 없나 불안과 의구심이 가득했다. 대안도 없다. 후임자와 1주일의 시간을 갖고 차차 일을

넘겨야 했고, 팀 내에서 인수인계 할 일들도 중간중간 회의 하며 넘기고 보완하 고를 반복 하고 있었다.


첫 육아휴직 때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했던 일을 누군가에게 넘기다 보면 나의 허물을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나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보완할 것들을 짚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대충 하고 넘어가기에는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고, 내가 대충 넘긴 모든 순간은 결국 내 평가로 고스란히 남는 것임을 잘 안다.


이 회사에 10년을 다니면서 나는 3번의 인수인계를 했고, 그때마다 나의 실수와 한계들을 후임자에게 내보여야 하는 경험을 했다. 부끄럽고 불쾌한 경험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니 할 말도 없다. 내가 해오던 일을 맡은 이가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하는 것도 보아야 했다. 그런 부끄러운 순간을 받아들이고 다음에 누군가에게 인수인계 할 때는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애쓰며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다.


난 폭풍 같은 매일을 보냈고, 해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느낌과 함께 언젠가 더 이상 뭘 하지 못하고 포기

해야 할 순간이 오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몸은 나날이 무거워지고, 일은 줄지 않는다. 이러다 애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 또 있다. 그럼 나는 더 하고 싶어도 어차피 못한다. 그럼 나는 차라리 빨리 정리를 하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을 맞이했다. 내가 더 뭘 하기보다는 후임자에게 넘길 것들을 넘기고, 후임자가 직접 진행할 수 있도록 전달했다. 후임자가 자료를 보고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갖게 되고 그렇게 자료를 파다 보면 나에게 물어볼 것이고, 그렇게 업무가 굴러가게 되었다. 다행히 최종 선발된 후임자분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일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에서 10년, 인정을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