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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ug 17. 2024

애국자라 둘째를 낳은 건 아닙니다

그냥 축하만 해줍시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굳이 내입으로 먼저 임신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사람일은 알 수없고, 또 일 하는 순간에 임신 사실을 굳이 알려야 할 이유도 없었다. 임신과 일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다행히 얼굴엔 크게 살이 붙지 않아서 적당히 낙낙한 원피스를 입고 있으면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정도였다. 알 수 없는 민망함 + 임신임을 밝힌 순간 발생하는 의미 없고 불필요한 질문들 + 위치나 상호 간의 맥락과 관계없는 배려와 환대가 좀 부담스럽고 성가셨다.


출산율 0.7. 날로 한 없이 가벼워지고 있는 저 숫자 때문에 여자들이 걸어 다니는 자궁이 된 지는 오래지만, 1 미만으로 내려간 다음부터는 여자는 함부로 대해도 자궁은 귀하게 여기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당사자인 나로서는 임신과 동시에 대단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머 임신하셨어요? 축하드려요.
근데 올해 나이가? 어머 정말 대단하세요~
애국자세요~
근데 계획하신 거예요?


질문의 순서도 똑같고 구성도 비슷하다. 대단하세요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손발이 오그라들고 민망해진다. 축하드려요까지는 괜찮은데 자연스럽게 나이를 묻고 이렇게 비루한 출산율의 시대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이를 낳을 결심을 했다는 것이 남들 눈에 대단해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첫 아이를 만 39세에 낳았고 둘째를 낳으면 언제가 되건 남다른 나이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노무 출산율 때문에 더 특별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한 것은 대단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이다. 나라를 위해서도, 누군가가 시켜 셔도 아니다. 그냥 내가 둘째를 만들고 싶었고, 내 피지컬이 그 의지를 뒷받침해준 것뿐이다. 거기에 거창하게 애국자라 불리니 더없이 낯간지럽다.


사실, 다들 인사할 방법을 못 찾은 탓에 나온 이야기라는 걸 안다. 축하의 인사를 하는 방법이 별로 없는 거다.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요즘 임신 축하 인사 트렌트 키워드쯤 되는 셈이다. 그게 현실이고 그런 소소한 말들에 날이 서는 건 사실 쓰잘데 없는 예민함이라는 것도 잘 안다. 나의 과민함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넘기는 것이 사회가 내 나이에 기대하라는 바라는 것을 잘 알기에 늘 웃으며 넘기지만 들을 때마다 불편한 어쩔 수 없다.


안다. 난 이런 부분에서 쓸데없이 예민하다.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통해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학습되었을 뿐이다. 개인의 행복추구를 애국으로 연결 짓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를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럼 출산율이 높으면? 아이의 존재를 하찮게 여긴다는 뜻인가? 태어나면? 그다음은? 그렇게 국가를 위해 소중한 존재라면 삶의 모든 순간을 다 어여삐 여겨야지, 태어나기만 하면 그다음은 어느 누구도 존중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세상의 모든 아기를 국가의 소모품으로 대하는 누군가의 불편한 태도를 의식 없이 학습해 무려 임신 축하의 인사로 한다는 게 영 마땅치 않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나 삐딱한 사람이다. 국가의 일원으로서 존재하고 난 나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내 아이가 미래를 위한 저축 취급 당하는 것에는 불편함을 감추기 어렵다.


그러니 나같이 뾰족하고 샤이유난족들은 어디나 있으니 우리 임신 축하 인사는 좀 외우면 좋겠다.


아이가 생겼다고요? 축하해요!
컨디션은 어때요? 건강은 어때요?
예정일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무사히 무탈히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아이와 만나기를 기원할게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그 평범한 인사가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들을 평온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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