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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an 26. 2021

사도사도 끝이 없고, 막상 사면 얼마 안쓰는!

살수도 안살수도 없는 육아용품의 지옥

임신을 하고 조카들이 쓰던 물건들을 물려받았다. 그 물건만으로도 방 하나가 가득차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내가 과연 이 물건들을 다 쓰게 될까 고민했다.


하지만. 다 쓴다. 놀랍게도. 문제는 쓰는 기간이 정말 짧다.


처음 살림이 들어왔을때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아이템은 아이침대였다. 범보의자, 아기체육관,  점퍼루, 보행기같은 덩치 큰 아이들이 한바탕 들어오고 거기에 살균기, 아기 옷, 천기저귀 등등등 정리함 가득가득 어마어마한 짐이 집에 들어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엄마들을 만날때면 뭔가 손에 하나라도 더 들려 보냈다. 수유브라부터 시작해서 아기옷, 양말, 장난감 등 내가 인생에 이렇게 많은 물건을 과연 다 쓰게 될지 의문에 드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외국에 있는 가족들도 우편이건 인편이건 책에 옷에 바리바리 보내기가 일상이었다.


소위 필수템이라 불리우는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어느정도 갖춰지고 나니 새롭게 떠오르는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위 북유럽 스타일의 감성템들, 예쁜 딸랑이, 디데이 푯말, 뽀얀 컬러의 블랭킷들... 집에 물려받은 물건이 한가득이거늘, 인스타그램에만 들어가면 육아템 개미지옥이 시작됬다.


나도 저렇게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마구 치밀어 올랐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는 물건일수록 비싸게 마련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소위 핫하다는 물건은 하나같이 예쁘고 비쌌다.


문제는 그 욕구가 아이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예쁜 아이템 예쁜 코디 예쁜 데코는 크고 예쁜 집을 기반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닿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비싼 아이템을 척척 사는 엄마의 재력은 크고 예쁜 집 안에서 가능 했고, 그런 예쁨이 쌓이고 쌓이면 협찬이 붙고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 공짜 물건이 들어가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럼 나같은 엄마는 굳이 그걸 나도 따라사거나, 비슷한 느낌을 구현할 대체 아이템을 검색해 굳이 사는 실수를 범한다. 나는 그걸 예쁘게 코디해서 기념 사진 찍을 의지도 시간도 없는 워킹맘인데말이다.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에는 수도 없이 많은 국민템이 있고, 그래도 아직 상대적으로 미개척지인 유투브에는 조금은 정제된 콘텐츠가 엄마를 홀린다.


쓴다. 맞다. 우리 아이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과즙망도 필요하고 스낵컵도 필요하지만 사실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숟가락으로 긁어서 과일을 먹일수도 있고, 그냥 그릇에 간식을 담아줄수도있다. 하지만 물욕에 눈이 먼 엄마는 예쁘다는 이유로 아마존의 바다를 방황하고 솔드아웃의 늪에서 허덕인다.


하지만 나와 아이를 분리시키고 잠시의 쉴틈을 만들어주던 이이템들은 예쁜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템이라 불리우는 총천연색의 육아용품들은 다 그만의 목적이 있었다.


지겨워서 이제는 제발 음악만이라도 바꾸고 싶다 했던 타이니모빌, 나의 힘없는 허리를 지켜준 아기침대와 스탠딩욕조 정도는 약과였다. 진정한 인테리어파괴자(정작 도배도 안하고 들어가놓고 인테리어를 논하다니)인 주제에 아기의 에너지를 팍팍 소모시키고 움직이기 시작한 아이를 잠시나마 가둬(?)놓을 수 있었던 점퍼루. 너무 요란해서 저녁엔 꺼놓아야만 했던 브이텍 걸음마 보조기, 아이가 일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진가를 발휘하던 아이팜 아기체육관까지. 엉망진창의 디자인에도 아이는 대흥분했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가득 물건을 보내준 동생이 그랬다. 이거면 왠만한건 다 될 테니 내 시간과 체력을 벌어주는 아이템에 돈을 쓰라고. 하지만 나의 소비력은 여전히 사치에 가까웠고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아이를 위한 소비는 매우 합리적인 방패였다.


1년을 돌아보면  분명 없어도 될 것이 있다. 3명의 아이를 키우는 동생의 말처럼 시간과 체력을 아껴주는 아이템도 있었고 사치성 아이템도 있었다. 아이를 재우는데 도움된다는 온갖 아이템들을 섭렵하다 이제 슬슬 치장과 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옷을 물려받았음에도 손바닥만한 아가를 위한 새 옷을 사들였다. 아이가 보기 딱 좋은 책들도 이미 있고, 아이에게는 여러 책을 읽게하기보다는 한두권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말을 한귀로 흘리며 16권짜리 책 셋트를 들였다. 그래도 나의 마지막 선은 아이가 뛰고 서고가 원활해지기 전까지는 원피스는 가능하면 입히지 않는다.  코로나 시국이 좋아지기 전까지 가능하면 신발은 사지 않은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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