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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22. 2020

비정한 엄마는 분리 수면을 원합니다.

아이를 가졌을떄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지금이 좋을떄야" 였다. 


모든 아가는 다 지금이 제일 좋을때다. 뱃속에 품고 다닐떄는 내맘데로 되는데 낳으면 잠 한숨 못자고 날을 꼴땍 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갓난 아이는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잠이 들지만 그걸 14번에 쪼개 자는 느낌이랄까? 고양이 같다. 정말. 


우리집 작은고영은 평범하디 평범한 아가였다. 한시간에 한번씩 먹어야 하고 먹으면 이내 잠이 드는 세상 흔한 아가. 이유 없이 밤새 우는 경우가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훌륭한 신생아였다. 


문제는 아이의 잠이 아닌 나의 잠이었다. 이미 임신 기간 내내 새벽에 깨버릇 해서 바이오리듬은 망가져 있었다.  초기엔 요의때문에 깨고, 중기를 넘어서서는 태동때문에 깨고, 막달에 가까워져서는 몸이 무거워 애초에 깊은 잠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을 나선 그날부터 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조리원에서야 "저 10시까지만 수유할께요" 라고 이야기하고 유축해서 가져다드리면 알아서 새벽에 보충해주시지만 우리집은 조리원이 아니고, 나와 남편은 3교대로 번갈아 근무하는 조리원 선생님이 아니다.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가지고 '먹놀잠'이 좋다는 말에 일단 애가 뜨면 먹였고, 순한 나의 아가는 먹고나면 트림하기가 무섭게 이내 잠이 들었다. 문제는 새벽이었다. 하루에도 10번도 넘게 수유를 하고 내가 자는 밤시간에만 우유를 먹이자는 우리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전략으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몰랐을뿐. 


그렇게 밤 수유를 아이의 아빠가, 그라고 낮 수유는 내가 맡아 가면서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미국의 시누가 아이를 아주 어려서부터 혼자 재웠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슷한 시간에 들은 단어가 바로 '수면교육'이었다. 


수면교육. 수면이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 수면교육이라니. 그저 졸리면 자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아이를 맞이한 샘이었다. 그리고 수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후 육아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 50일 겨우 넘긴 아이를 대상으로 수면교육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었다. 다들 어릴떄부터 시작하는게 맞다고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밤에 통잠을 길게 자던 시기도 아니고, 잠을 자면 3시간을 겨우 넘기던 때였다. 우유를 마시는 패턴도, 수면 패턴도 어느것도 자리잡지 못한 상태였다. 


제일 심플한 방법은 아이가 울던 말던 아이를 침대에 혼자 눞히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행위는 애가 눈을 감으면 우유를 먹다가 무조건 내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우유를 잘 먹고있는데, 심지어 눈을 감아도 양껏 우유를 먹던 아가였거늘, 눈을 감았다고 해서 아이를 품에서 내려 놓는 것은 생각마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맥을 놓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를 썼다. 갓난쟁이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니 낮에는 환하게, 밤에는 어둡게 해두라는 말도 충실히 따라갔다. 


그도 모자라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잠이 들떄까지 곁에 있지 않는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고문인지 그때는 몰랐다. 저녁 7시가 되어 목욕을 시키고,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주고 트림을 시키고 나면 아이를 침대에 뉘웠다. 


문을 닫고 카메라로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면 끝날 줄알았던건 나의 오산.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 가열차게 울어재낀다. 아직은 엄마나 아빠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각인이 되어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보호자가 곁에 없다는 것은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냥 으허으허 우는거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보호자를 잃은 갓난 아가는 인생을 걸고 운다. 악을 쓴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의 울음이다. 절박하다. 내가 외따로 떨어져나갔다는걸 느끼는 순간의 울음은 절박하기 이를대 없다. 나도 아이의 아빠도 그런 아이의 울음을 들으면서 견딜수 없이 괴로웠다. 수면교육을 시작한 첫날 문자그대로 울어버렸다. 내가 널 이렇게 울리려고 그 고생을 하고 낳은게 아닌데 미안하다고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따. 


그냥 품에 안고 재우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수면교육 할때마다 들었다. 울음끝이 길지 않은 아이인지라 울리다 더는 애가 숨넘어갈까봐 걱정될때쯤 들어가서 안아주면 5분을 넘기지 않고 멈추곤 했다. 안아주면 안우는데 그걸 알면서도 울도록 방치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나의 동요를 느낀 남편은 나를 도닥이며 잘 참고있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의 동공도 수시로 흔들리는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2주 가까이 아이를 1시간 이상 울리고 안고를 반복하던 나는 더이상의 수면교육을 포기 했다. 아이를 내려 놓고 재우는것도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포기 했다. 아이에게 같은 수면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이의 침대보다 나와 남편 사이에 누워 자면 더 푹 잘 잔다는걸 본 탓이다. 잘 자는데, 이렇게 잘 자는데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한단 말인가. 10년 넘은 낡은 돌침대의 따끈함과 라텍스매트리스의 부드러움은 0세 아가에게도 유효했던 모양이다. 


졸려하는 아가를 도닥이며 재우면 잠든 아가를 조심스럽게 침대 한가운데 뉘웠다. 우린 옆으로 누워 쪽잠을 잤지만 아이가 곤히 자는 것 만으로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새벽 수유 텀이 대충 1~2시에 한번, 4~5시에 한번 정도로 잡히기 시작하니 아이의 수면을 관리하는 것은 좀더 쉬워졌다. 여전히 먹이고 도닥여 트림시키는 과정은 있었지만 그래도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들어간 것만으로 너무나도 감사했다. 


밤잠이 없는 남편은 1~2시 텀을 담당하고, 그 새벽시간을 곤히 잔 나는 4~5시 텀을 담당했다. 그렇게 안아서 재우면 안된다는 말을 뒤로하고 우린 아이를 안아서 잘 재우는 것만으로도 매일 감사했다. 육아에서 제일 경계해야하는 것은 과욕이었다. 아이를 일찍 재우겠다는 마음으로 6시에 씻기고 재웠는데 12시에 깨서 새벽에 잠을 안자 밤을 꼴딱 지새웠다. 


어느순간 아이 옆에 누워있는 것 만으로도 잠든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정말 역대급 발견이었다. 어느날 문득 아이를 그냥 곁에 눕혀두고 있었는데, 내가 옆에 있기만 해도 잠이 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5시간 이상을 자는 순간을 맞이한건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안고 엎고 도닥이고 애써야 했는데 이런 충격적인 전개라니. 물론 그런 찬스는 아이의 아빠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내가 뉘워 재울때만 가능한 찬스였기에 이제 재우는건 매우 수월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확신이 생겨 140일을 넘겨 아이의 침대를 사주었다. 그간 사용하던 아가침대는 이제 아가의 큰 움직임을 담기에 너무 작고 허술했다. 나무로 된 침대가 아니라 그랬던건지, 접이식 아가 침대는 애가 팔다리를 파닥거리면 당장이라도 무너질듯 흔들렸다. 2주를 넘게 고민하고 고민해 데이베드 타입의 침대를 하나 주문했고, 범퍼로 뱅 둘러놓고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재우는 행위가 그리 어렵지 않아지면서 아이를 따로 재웠다. 아이가 나의 숨결을 느끼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아이는 잠이 든다. 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뒤집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낯선 침대에서 적응하지 못할까봐 낮에 일부러 데려가 같이 놀기도 하면서 차츰 적응 시켰고 다행히 아이는 첫날부터 크게 보채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잠이 들기 시작했다. 


다만 뒤집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자면서도 뒤집어대는 것이 문제였을 뿐. 뒤집는것까지는 좋은데 한번도 업드려 재워본적이 없어 그런지 뒤집고 나면 그대로 잠이 깨버렸다. 심지어 먹자마자 엎드리면 ㅌ할까봐남들 다 하는 머미쿨쿨도 답답해해서 안하던 아가에게 뒤집지 못하도록 머미쿨쿨을 얹어서 재우기 시작했다. 그도 길게 가지 않았다. 아이는 금새 힘이 생겼고, 어느 순간 이불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컸다. 


내 아이가 저까짓 이불은 아무렇지도 않게 탈출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 그리고 그걸 밤에... 하... 나의 아가야. 엎드리는건 좋은데 그래도 깨진 말지... 심란하기가 이를대가 없었다. 아이가 힘이 생기기 시작하니 잠들때 주로 하던 나의 치트키가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졸려할때 몸을 옆으로 세우고 품에 바짝 붙이면 아이의 눈 주위가 급 어두워지면서 슬슬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힘이 넘치는 나의 아가는 그렇게 몸을 세울라치면 바로 뒤집으며 탈출하기 시작했다. 몸을 타이트하게 잡으면 대노하신다. 졸려하는게 분명한데 몸을 세워 안으면 난리가 난다. 몇십분을 실갱이하다 포기했다. 나도 모르겠다. 굴러라. 베이비. 놀랍게도 30분 안밖을 침대위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더니 어느순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는 다른 차원에 들어갔다. 


아이는 내가 주는 허술한 우유 나부랭이를 먹고 순탄하게 자라고 있고 이제는 급기야 혼자 잠들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 아이가 잠이 덜 들었는지 인형이며 배개며 여기저기 얼굴 부벼댈 자리를 찾는게 보인다. 곁에 있던 엄마가 사라진게 잠든 와중에도 느껴지는 게지. 


마음이 짠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엄마의 살결을 찾는 아이라니. 이렇게 또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침대에 넣어 놓고 내가 나가도 알아서 잠드는 순간이 오겠지. 또 그때는 얼마나 울고 짠하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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