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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Feb 02. 2021

조금씩 '나'로 돌아가기

엄마도 중요하지만 나도 소중합니다.

임신, 출산, 육아휴직을 거치면서 가장 무서웠던건 '나'가 사라지는 거 였다. 많은 여자들이 그랬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선배 엄마들을 보면서, 그들이 선택한 엄중한 선택이 가진 후폭풍을 보면서. 우린 너무 안다. 여자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끊기고 관계가 끊기고 의욕이 끊기고 체력이 끊겨서 모든것으로부터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임신이 무서웠던 이유는 내 몸에 남은 임출육의 흔적이 아니라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내가 없어저버릴 수 도 있었던 공포였다는 사실을.


난 무심한건 한없이 무심하지만, 챙기기 시작하면 유별나다 소리를 들을만큼 챙기는 스타일이다. 운동은 안하지만 피부관리는 열심이고, 사람도 쉼없이 만나고, 자기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편이다. 하지만 임신과 동시에 피부 트러블로 일단 얼굴은 놨고, 씻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어서 화장품도 다 치웠다. 출퇴근도 택시로 겨우 하는 팔자에 외출은 언감생심이고 집에 오면 밥먹고 9시면 뻗었다.


아이가 예정보다 일찍 나왔고 출산을 월요일에 한 탓에, 금요일까지 꽉꽉채워 근무한탓에, 쉬지도 못하고 바로 육아모드로 들어갔다.


아이가 태어났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더 커졌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갈 틈이 나에겐 없었다. 이렇게 걸어다니는 우유가 되고 마는건가 싶었다.


11월 나의 생일날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가 태어난 날 출생신고를 하고 어린이집을  태어난지 2달이 채 되기 전에 홈쇼핑을 검색해 부동산중개사 인강 수강권을 구매했다. 뭐든 했어야 했다. 거금을 들였고 내 결정을 남편은 전적으로 지지해줬다. 하루에도 8시간씩 1년을 꼬박 들여야 합격한다는 시험이었다.


아이는 1시간에 한번씩 먹어야 하는 신생아였지만 일단 지르고 봤다. 손가락 마디에 힘도 안들어가는 상태에서 펜을 잡았고 책을 펼쳤다. 대학원 입시 직전에 봤던 토익 시험 이후에 이렇게 뭔가 외우고 가야하는 시험은 너무 오랜만이다. 사실 토익시험 준비시즌을 제외하면 그마저도 대학졸업 이후 시험이란걸 본적이 없다. 


하지만 가슴이 뛰었다. 설렜다. 아이를 낳고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주저앉아 있지 않고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돌아가는 머리를 그나마 끌어당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내맘대로 되지는 않았다. 가슴을 다 펼치고 유축기를 끼운체로 인강을 볼때도 있었고, 책을 펼쳐놓고 아기 방에 뛰어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집중 못할까봐 신랑이 먼저 움직였지만 그걸로 해결 안되는 순간은 언제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다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 브런치에 써두었던 임신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인생에 한번은 책이라는 걸 내보고싶었지만 그게 이런식으로 다가올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나기도 수월하지 않았고 이메일 몇번과 통화, 문자로 필요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또 책으로 낼 가치를 느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미 다 나온 원고였고, 추가원고 한두꼭지만 써서 주면 끝날 상황. 책이 나온다니. 세상에나. 계약서를 주고받고, 사인을 하고, 계약금을 받았다. 


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온라인 경제콘텐츠 미디어에 일하는 지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그럼 너도 글을 한번 써볼래?" 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내용으로 주식에 '주'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히기 쉬운 주식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좌충우돌하던 나의 주식 일기를 온라인 콘텐츠로 쓰기로 한 것이다. 그 꼭지가 완성되기 전에 또다른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 그 주식일기를 출판하고 싶다고. 이미 온라인용 원고는 다 넘긴 상태였어서 바로 출판사와 미팅을 했고, 콘텐츠를 노출시켜주던 미디어에 양해를 구하고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내가 작성한 원고는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고 분량에 절반밖에 안된다면서 꾸역꾸역 새로운 꼭지를 만들어 내야 했다. 5월에 시작한 원고는 금새 끝날 줄 알았지만.... 10월이 되서야 끝났고 이제 내일 온라인에 풀릴 예정이다. 


주식으로 시원하게 온라인 콘텐츠를 써본 나는 내친김에 비슷한 무드로 부동산 콘텐츠도 쓰기 시작했다. 13꼭지를 잡았고 빠르게 글을 써나갔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혹은 신랑에게 맡기고, 혹은 시가에 맡긴 그 짬짬이 집중해서 원고를 작성했고 나의 빠듯한 살림에 한줄기 빛인 원고료를 그렇게 계속 받을 수 있었다. 2권의 책은 이런저런 사연을 넘어 아이가 돌이 훌쩍 지나고 책으로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엇고, 공교롭게도 2권이 다 2월달에 나올 예정이다. 


원고와 책에 파묻혀 살다가 부동산 중개인 시험은 홀랑 말아먹고 복직을 해버렸다. 복직을 하고도 뭔가 육아휴직 끝나다 만 느낌이었는데 드디어 책이 나온다 하니 이제야 비로소 휴직을 마무리 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한 아이와 2권의 책과 2꼭지의 온라인 콘텐츠를 세상에 쏟아내고, 코로나와 싸우며 버틴 1년.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발버둥친 1년. 그렇게 1년이 가고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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