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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15. 2021

왜 거주지가 엄마의 근무지와 가까워야 하는가

그또한 엄마를 옭아매는 족쇄 아닐까?

시부모님은 시조부모님을 모시고 사셨다. 최소한 10년이상.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어머님이 둘째인 남편을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걸레질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중간에 잠시 헤어져있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20년은 함께 사신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그중 시할아버님이 여러해 전 돌아가셨고, 시할머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아무도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모두가 안다. 이제 집에 돌아오시기 어려우실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흔을 넘긴 나이이시기에 아주 긴 시간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도 말이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까지 (과거에 아마도 시할아버지의 집이셨을) 시할머니의 집에 시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시할머니의 입원 이후에도 쭉 거주 중이히다. 그러나 멀지 않은 동네에 분양 받아두신 아파트가 있으셨고, 언젠가 할머님에게 큰 일이 생기면 그 집으로 들어간다 생각하고 계셨다. 그러다 분양 받아둔 아파트의 세입자가 나가야 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지금 집은 비워야 할 상황이 발생하니, 그 결에 이사를 들어가고 시할머니의 집은 비우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세입자를 들일 수도 없다. 시할머니 사후에 가족간의 분란을 일축하려면 집이 바로 팔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두어야 한다. 그렇게 시할머니의 집은 2개월 이내에 비워지게 되었다.


시할머니의 집은 학군도 입지도 꽤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서울은 아니지만 어디 내놔 빠지지 않는 동네에 그중에서도 학군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언덕에서 유모차로 낑낑대야하는 우리동네와 달리 평지에 있고, 동네 분위기도 훨씬 쾌적하다. 주차공간도 훨씬 넓고, 비슷한 연식에 좁고 빡빡한 느낌의 우리 아파트 단지와는 다르게 널찍하고 시원시원하다. 도보 5분 이내 거리에 큰 공원도 있고, 아이들이 자라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남편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집이, 그 좋은 집이 빈다면 우리가 들어가볼까?


우리집에는 3억에 가까운 대출이 물려있다. 3억원. 평생 노동을 과연 갚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금액이다. 만약 지금 우리가 시할머니의 집으로 이사를 가고, 지금 사는 집에 전세를 들이게 된다면 그 대출은 한큐에 정리된다. 우리는 은행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너무 좋은 여건이고, 대출의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얼마나 엄청난 딜이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1번. 할머님이 돌아가시면 오갈데 없이 붕뜬다.

할머님께서 소천하시면 분명 그 집은 팔고, 그 이후에 고모님들과 작은아버님, 아버님이 고르게 나눠갖는 그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짐을 빼야하는데, 아무리 지금 전세금이 올라 대출 전부를 해결하고도 남을 돈을 전세금으로 받는다고 해도, 대출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업는 상황이 된다. 심지어 그러다 우리가 다시 우리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세자금을 돌려주기위해 또다시 엄청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


2번. 나의 출퇴근 시간이 미친듯이 늘어난다.

남편은 프리랜서. 나는 직장인이다. 출퇴근을 매일 해야하고 지금의 거주지는 출퇴근에 최적화되어있다. 여차해서 택시로 쏘면 20분이면 출근이 가능하고 버스를 탄다고 해도 도어투도어 35분이면 가능한 최고의 위치다. 그 지역으로 자리를 잡는데 한몫 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사를 만약 가게 된다면 최소 편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소요되고, 그와중에 유경험자에게 물어보니 출퇴근시간의 붐비는 강도는 상상이상이라 2시간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체력소모는 상상도 못하겠다. 완전 초 칼퇴를 한다고 해도 8시 이전에 귀가는 불가능 할 확률이 높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시간을 내내 서서 와야 할 확률이 높다. 출근시간에 서있는 것은 당연히 기대도 안한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 구간인지 아니까. 안그래도 주말에 지쳐있는데 심지어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하루에 4시간, 1주일이면 20시간, 1년이면 1천 시간 이상을 길거리에서 소모해야한다.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몇백만원의 연봉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3번. 그렇게 되면 나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평일 시간이 사라진다.

지금은 7시반에 아이와 함께 눈을 뜨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안아주고 하는 시간이 확보되지만, 만약 이사를 가면 6시 반에는 준비해서 7시 반에는 출근을 위한 교통수단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렇게 8시가 넘어 귀가하면 아이는 졸려서 잠이 들어아 햘 시간이 되고, 설령 안자고 있다고 해도 나로 인해 수면시간이 한없이 뒤로 미뤄질 것이다. 엄마와 놀고싶은 아이의 마음은 이미 몇번의 야근으로 확인한 바이다. 자는 아이를 보고 나가고, 자고 있는 아이를 마주해야하는 일상 나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 박탈감이 엄청난 것이라는 게 유경험자의 조언이었다. 그 박탈감의 시간은 남편의 물리적 노동으로 채워질 것이다. 지금은 일이 한가한 편이지만 일이 더 많아지면 그 다음에는 시어머니에게 전가될 노동일 것이다.


4번. 서울 생활 자체에 대한 포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 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울이 아닌 지역의 생활은 나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다. 지금은 유주택자라 청약이 쉽지 않지만 언젠가 규제들이 풀리고 상황이 달라지면 청약신청도 하고 그런 일이 있을텐데 주민등록이 서울이 아닌 것은 알수 없는 찜찜함이 있다. 모든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서울에서의 생활 그 자체가 나에게는 몹시 유의미하다. 아무리 서울에 집이 그대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머리가 몹시 복잡해졌다. 모든것이 나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아이에게 더 좋은 여건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에 대전제는 나의 '희생'이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의 희생.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머리가 많이 복잡해졌다. 남편은 익숙한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지만 나는 아니다.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 내가 겪는 타격이 훨씬 크다.


돈을 선택하고 나와 남편의 체력을 희생시킬 것인가, 돈을 포기하고 다른 것들을 지킬 것인가 사이에 폭풍고민을 하다가 SNS에 올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는 반대입니다. 저도 항상 어머니 근무처 근처에 살았습니다.
(발령 때마다 전학 다녔지만)
집은 여성, 또는 어머니쪽 직장에 가까운 게 낫습니다.


이 글을 보자 또다시 한없이 심란해졌다. 왜. 왜때문에 집은 여성 혹은 어머니쪽 직장이 가까운게 낫다는걸까? 단순히 여성의 체력적인 한계에 대한 문제일까? 흔히들 그렇게 이야기 한다. 여자에게 편한쪽을 선택하라고.

육아에서 여성이 갖는 역할과 책임은 남자들에게 부여되는 것과 다르다. 남자들에게는 생계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올리고, 여자에게는 생계 + 육아가 얹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집은? 자의건 타의건 현재 우리집에서 육아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남편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편한 쪽으로 이사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남편은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의 체력과 나의 상실감은 어디서 어떻게 채워야 하는 것인가. 안다. 다들 무언가 얻기 위해 포기하며 산다. 나는 늘 하나도 포기 하기 싫어하는 욕심쟁이 인것도 안다. 심지어 이런 고민을 어른들께 말씀드린다면 "언제 정리할지도 모를 집에 들어오게 할수는 없다"반대하실수도 있지만, 최소한 우리는 대화를 시작한 이상 어떤식으로든 부부간에 결론을 내야 한다.


 여성. 어머니. 생물학적인 기준인가 역할의 기준인가 잘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나도 산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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