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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29. 2021

아이의 거짓말과 커뮤니케이션 사이

초보 엄마는 오늘도 운다


장난감을 잘 갖고 놀다가 갑자기 '아파아파'라고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는 즐거운보다 아프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의 모습에 당환하는 것이 먼저였다. 앞도뒤도없이 급 울어버린 아이는 왼쪽팔을 계속 만지며 아프다 했다.


아플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길래 약병에 물을 담아 약처럼 줘보기도 하고, 아프다는 팔에 뿌려줘보기도 했다. 뭔가 아픈것에 약을 주거나 바르는 제스쳐를 취하면 반응이 있을까 싶은 얄팍한 마음에서 였다. 연고를 바르는걸 보고 있을때 "아빠가 아야해서 그래"라고 말했던걸 꽤 오래 기억하는 아가였으니.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래도 울음은 여전했다.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주자 눈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아픈데, 아프다고 하는 거 치고는 너무 슬프게 울었고, 아프다 말하는 팔을 움직이지도 않고, 블루베리를 줘도 그 팔로는 잡지않고 계속 아프다며 다른 손으로 블루베리를 집어먹었다. 저건 정말 아픈거거나, 혹은 아프지 않다면 아프지도 않은 팔을 움직이지 않고 엄마에게 보여주는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는것. 어느쪽도 소름돋는다. 아프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팔을 움직이지 않고 물건을 잡지도 않을 줄 안단말인가? 실제로 아픈게 아닌데도? 세상에.


어린이집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혹 낮에 어디 부딛힌일이 있냐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랑 놀다 좀 부딛혔는데, 그게 생각날때마다 아야아야 하며 울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웃으며 "우리 똑똑이가 아까 부딛혔던걸 기억하고 이야기하나보네요"라고 말해주셨고, 최소한 아픈게 아닌 것을 확인 한 다음에도 사실 난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1%의 가능성을 지우지 못해 조바심냈다. 블루베리 2통에 비타민사탕까지 손에 얻고 나서야 왼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비슷한 단어가 들리면 다시 아파아파라고 말하며 울먹거렸다.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고, 난 아이 옆에 함께 누웠다.


아이는 소통을 원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엄마 아까 여기 아팠어"라고 말했던 거다. 그림책 속에 웃는 모양의 고양이 그림과 우는 모양의 고양이 그림을 번갈아 보여주는 것 만으로 표정이 훅훅 변하는 아가다. 웃는 사진을 보면 금새 따라 웃고 우는 그림을 보면 얼굴을 있는대로 찡그린다. 감정표현이 다채롭고 섬세한 아이다.


아팠다고, 아까 아야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아이는 졸음기 가득한 울음을 보여줬다. 아팠고, 아야했다고 말해야하는데 너무 졸린 나머지 울음이 나와버린것. 그리고 엄마아빠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아프다는 건줄 알고 호들갑인거고. 남편은 그냥 아픈척 하는거라고 괜찮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일부러 무던하고 씩씩하게 키우자며 넘어져도 부러 일으켜새우지 않는 우리다. 아이는 매 순간순간 반응하고 통증도 느끼지만 그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 것이 아쉬웠던걸까? 아프다는 말을 전하면 저렇게 울줄이야.


그 짧은 순간, 나는 모르는 아이의 사인을 내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봐 조바심이 났다. 나의 소소한 무신경이 아이를 크게 아프게 할까봐 무서웠다. 당장 응급실에라도 가야 하나 고민했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가 보내는 사인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한 엄마가 될까봐 무서웠다. 내가 아이의 사인도 인지 못하는 무지한 엄마일까봐, 그게 아이에게 큰 데미지를 줄까봐 너무 무서웠다. 어찌보면 별게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나에게는 하나도 소소하지 않았다.  내가 일해서, 그게 이기적이라서 아이에게 마음이든 몸이든 상처가 남을까봐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 내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웃어주는 아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눈을 뜨면 늘 웃어주는 아기지만, 오늘따라 침대에 유독 오래 누워 얼굴도 요래요래 만져주고, 싱긋싱긋 웃어주었다. 출근시간에 늦었지만 이런 날이 많지 않기에 조용히 누워 눈을 맞춰주었다. 함께 누워 엄마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아가.  엄마의 얼굴을 매만지며 활짝 웃어주는 나의 아가. 혹여라도, 1%라도 아픈건 아니었을까 고민했던게 없어졌다는거 만으로도 고마울뿐이었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만 마라 수도 없이 되내였다.


오늘도 난 출근을 했고, 또 울면서 헤어졌고, 나는 일을 한다. 내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은 울음뿐이지만, 언젠가는 말하겠지. 엄마 가지말라고. 담담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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