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은 참 무섭다

혼자서 어버버 하기 딱 좋더라

by 김옥진

회사의 복지 중 하나인 건강검진비 20만 원 지원은 나름 해마다 열심히 챙기려고 하는 항목 중 하나. 건강하니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검진을 해왔다. 2018년 갑상선에 뭔가 작은 결절이 있다고 했고, 임신과 출산육아휴직으로 그간 건강검진을 못했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오랜만에 검진을 받았는데 그새 결절이 좀 커졌단다.


검진센터에서는 모양은 이쁘지만 그래도 사이즈가 좀 있네요...라는 말을 했고 결과표에도 전문가와 상담하라는 의견이 있었다. 나는 막연한 공포감에 대뜸 대학병원을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종합병원을 겪었다.


난 종합병원이 뭐하는 덴지 몰랐다. 그냥 전화해서 예약하고 병원에 갔다.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3차 병원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냥 전화로 예약하고 의사 앞에 앉았고, 의사는 소견서도 CD도 챙겨 오지 않은 날 탓했다.


그래서 저더러 뭘 해달라는 거예요? 조직검사하래요?
그럼 제가 그거 오더 해드리면 돼요? 뭘 봐야 저도 이야기를 하죠
아. 조직검사하라고 했어요


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도 몰아붙이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조직검사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난 병원에 가면 뭔가 검사를 받는 것부터 시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종합병원은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는 곳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의 진료를 받고, 작은 병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소견서와 관련 촬영 자료 등을 들고 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그 자리에 앉아서 알았다. 그 냉랭한 반응을 듣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날이 바짝 선 차가운 반응에 바짝 위축되고 긴장된 나는 그때부터 두뇌회로가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뜻하고 부드럽게, 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 선생님은 여긴 없었다. 작은 방에 간호사 한분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케어하려야 할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없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아. 설마 나 안 와도 되는 건데 괜히 판키우고 온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의사의 방을 나와 그 옆에 각종 처치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로 토스되었고, 내가 받을 예정인 조직검사의 프로세스와 특징, 주의할 점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날선반응에 긴장한 나는 그래도 그때부터는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10여분을 꼼꼼하게 설명해주셨고, 나에게 큰 안내장을 하나 주셨다. 오늘, 그리고 검사 당일 내가 할 일이 적혀있었다. 여기서 2번 창구로 가서 검사 예약을 하고 검사 당일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안내를 다시 받는다.


검사 예약하시고 수납하시면 검사 결과 보실 날자 수납하는데 찍혀있을 거예요. 그날 안되시면 전화해서 다시 예약해주세요


아. 오늘 검사를 받을 수 없구나.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을 내가 또 와야 하는구나. 심지어. 검사받는 날 의사를 만날 수도 없는 거구나.


9월 23일 오전에 정신없이 후루룩 병원에서 흘러갔고 의사 선생님을 3분, 간호사 선생님과 10분의 시간에 대한 대가는 대략 15만 원이었다. 검진센터에서 CD를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검진센터 사이트를 뒤지다가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있는 상담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원에 나서면서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 아니 최소한 내가 순서가 틀렸다. 검사에 대한 수납은 하지 않았으니 일단 검진센터 세터에서 내가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결에 바로 검진센터로 가서 의사의 상담을 받았다. 그곳의 의사는 나의 건강검진 기록을 쭉 보고 의사로서 눈에 띄는 항목들의 소견을 이야기해주었다.


다행히 그 의사 선생님의 소견도 조직검사가 맞았다. 소견서와 CD를 받아 들고 검진센터를 나왔고,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다음 주에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검사시간에 맞춰 반차를 내야 하고, 그리고 2주 후에 또 방문해서 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 소견을 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또 반차를 내야 하고, 갑상선 담당 선생님은 1주일에 하루만 진료를 보시고... 그럼 난 선택의 여지없이 그날 가야 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몹시 귀찮아졌다. 그냥 달고 살면 안 되나? 1cm 얼마 안 되는 사이즈 같은데. 하지만 뭔가 나는 일을 벌였고, 심지어 부인과를 다녀오라는 소견도 있어서 또 다른 의사를 만나러 저 병원에 가야 한다. 심지어 부인과 담당 교수가 나오는 날은 검진 날도, 검진 결과 들으러 가는 날과도 맞출 수 없다. 나는 하나의 검사를 위해 최소한 3번의 방문을 해야 하고, 수납의 과정과 처치의 순서도 온통 뒤죽박죽인 그지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탔다는 것까지 인정하고 나서야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검사날도, 또 검진 결과 들어가는 날도 쉽지는 않았다. 왜 대학병원 갈 때 어른들이 자식들이랑 같이 가는지 알겠더라. 예약을 했더라도 상황이나 예후에 따라가야 할 곳이 엄청 세분화되어있고, 순서가 틀리면 서로 정보공유가 안돼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순서도 잘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은들 내가 혼자 힘들고 번거롭게 그 상황을 해처 나가야 한다.


목에 마취까지 하면서 엄청 큰 바늘을 찔러 넣어(물론 바늘 치고 작은 거겠지만) 떼낸 작은 조직만으로는 내가 암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고, 암일 확률은 15~30%. 결절 제거 수술을 하고 나서 떼어낸 조직을 가지고 다시 검사를 해야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단다.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 만다 설명도 길지 않았고, 그냥 수술은 언제 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의사 앞에서 또 좀 어벙해졌다. 초진은 1일만 오픈되어있었지만, 이분은 수술도 일정도 많으신 분이었으니 그냥 지금 빨리 정하시란다. 당장 다음 주도 가능하다... 남편의 일정과 나의 일정, 아이의 일정까지 다 맞춘 날짜 중 의사 선생님의 일정을 맞추어 빠르게 수술 날짜가 결정되었다.


다시 옆방의 간호사 선생님에게 토스되어 수술 전 검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검사를 받고 그 검사 결과를 듣는 시간을 또! 갖고! 그다음에서야 입원하고 수술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숨이 차더라. 초진 하고, 검사하고, 검사 결과 듣고, 수술일정과 입원 일정 잡고, 다시 CT 찍고 피검사, 호흡기 검사하고(그 와중에 호흡기 검사는 수요일 오후 1시 30분에만 된단다) 그 결과를 들으러 또 병원에 와야 한다. 그럼 난 수술 전에 최소 2번의 반차를 내야 한다. 아우 정말. 수술 한번 하기 되게 어렵네.


입원을 앞두고 있으니 수납까지 가는 길은 더 길었다. 수술 전 검사를 예약하고, 검사 예약을 완료한 후 수납을 하고, 그다음에 입원 수속을 미리 해야 한다. 이걸 혼자서 다 하려니, 괜히 리 서럽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 불가하고, 보호자는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 나가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들어올 수 없다. 난 간단한 간병까지 가능한 병동을 선택했다. 비용 차이도 얼마 안 나고, 내가 몸을 못 가누는 상황은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그거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서고 잠시 정신을 차릴 시간을 갖은 후 보험설계사 분께 연락을 드렸다. 암인지 아닌지 진단이 나와야 최종적으로 보험 적용 범위가 확정될 것이니 사전에 뭘 내고 어쩌고 할 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입원비와 수술비는 보험처리를 해야 하니 미리 알려드렸다. 검사를 받고 있고, 아마 이번에 없는 한 다음 달에 수술을 한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였다. 돈. 분명히 백 단위의 돈이 들 것이니.


이유가 뭐 건간에. 나는 이제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암일 확률이 15~30%라는 말은 70~85%는 암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15~30%라는 숫자가 작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는 말에 나보다 더 긴장한 건 신랑이었다. 아이를 혼자 케어해야 하는 시간이 한 1주일은 될 것이고, 수술 후에는 한동안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무거운 것도 들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만 2세 베이비와 함께 사는 엄마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그렇다고 이 베이비가 미친 듯 아빠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 달 후. 나는 아마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은 해봤지만, 그것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단계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게 뭐든 그냥 잘 끝나면 다 좋은 거지만 종합병원은 정말 피곤하고 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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