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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06. 2021

24개월 아가에게는 얼마나 많은 언어가 축적되어 있는가

말조심 또 조심

아이가 입이 터지기 시작한 건 좀 되었다. 엄마 아빠 소리도 곧잘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비슷한 발음이지만 구분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아서 분당 할머니 성수동 할머니로 구분해 가르쳐 주고 있다.


가능하면 유아어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며(물론 맘마 아야 까까 같은 단어는 당분간 대체가 어려울 것 같고), 가능하면 부정적이지 않은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안돼' 같은 표현은 피할 길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다른 어린이들과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요즘은 아이에게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단어를 들으며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자연스럽게 음악이 끝나 다른 음악으로 넘어갔는데 아까 그 음악을 틀어달라며 때를 부렸다. 음악을 찾는데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고,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싫어


너무라니. 너무라니. 너무라는 단어에 너무 걸맞은 저 표정이라니. 나는 그 짜증 가득한 얼굴에 뽀뽀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뽀뽀 시여! 소리를 기어이 듣고야 말았다.


사실 노래 틀어놓고 놀란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아이가 크라잉넛 노래를 좋아해 자주 틀어줬는데, 비교적 다른 밴드들의 노래에 비해 건전하지만 그래도 간간이 걸리는 가사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른의 노래니까. 아이를 뒤에 태우고 이동하며 ‘말 달리자’를 듣는데 뒤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닥쵸


라고 따라 하더라… 영상을 보는데 히껍했다. 음악을 따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음악이 주는 느낌만 보고 너무 무거운 음악이나 욕이 많이 나오는 힙합류는 거르고 있었는데. 닥쳐에서 부러졌다.


아이가 단순히 어휘만 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상황을 읽고, 판단을 하고 비교도 하기 시작했다. 감기였는지, 접종이었는지 무튼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그날따라 5~7세는 족히 되는 큰 언니들이 예방접종을 무더기로 맞으러 온 날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 진료실로 들어왔고, 그런 언니들이 울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언니 주사 꼭, 아파 우여(울어)?
아가는 안 울어?
아가는 안우여


그리고 진료를 들어갔고, 실제로 주사를 맞으며 잠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나왔지만, 두 손에 사탕을 쥐어 들고 (어디서 배웠는지) 굳이 티셔츠 앞판으로 눈물을 닦으며 나왔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가 안우여쪄


그래. 저 큰 언니들도 주사 맞고 울면서 나오는데 문 열고 나올 때 눈물 쓱 닦고 시크한 척할 수 있는 네가 위너다. 싶었다. 언니들은 울고 나왔지만 난 아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언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고, 본인은 다르고 싶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두 돌이 지나가니 의사표현의 레벨이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자고 있으면(물론 난 보통 애가 깨면 같이 깨서 눈감고 있는 척한다) 물끄러미 보다 폭 파묻힌다. 엄마 몸 위에 이리저리 치대며 한껏 안긴다. 엄마가 깼다는 걸 알면 “눈 떴다” 라며 얼굴을 얼마나 부드럽게 쓰다듬는지 모른다. 다시 눈을 감으면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린다.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마성의 문장이 있다.


오모니 빠이 오세요


어머니라니. 이미 22개월 언저리부터 어디서 배웠는지 어머니 아버지를 외치던 아이다. 엄마 빨리 와보다 부드럽게 손짓하며 어머니 빨리 오세요라고 말하는 게 더 잘 먹힌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아가다.


사탕을 먹고 싶으면 나를 사탕이 있는 장 근처로 끌고 와 앉히며 사탕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루는 “뭐 이쁘다고!”라고 했더니 냅다 볼에 뽀뽀를 한다. 우리 집 뽀뽀 규칙은 볼 양쪽 한 번씩, 이마, 그리고 코끼리 콩 부딪히기다. 뽀뽀해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는 우리 아가는 사탕 앞에서 인정사정없이 뽀뽀를 날린다. 심지어 눈에도 해줌!!!


아니 이 약아빠진 아가를 내가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빵 터지며 주저앉기를 숱하게 하고 있으며 그 살가움에, 애교와 잔머리에 무릎을 탁 치고 있다.


언어와 비언어를 오가며 엄마 아빠를 녹이는 24개월 베이비에게 오늘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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