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Nov 19. 2021

너 이렇게 계속 때부리면 엄마 아파! 아프다고!

아이에게 협박을 해버렸다

 

두돌이 지나고. 아이는 말도 잘하고 또 말귀도 제법 잘 알아듣는다. 좋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싸움이 된다. 아이가 '섭섭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제 이 아이와 많은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모든 단계에서 발달이 빠른편이다. 좀 마른편이긴 하지만 키도 늘 조금씩 컸고, 뒤집고 앉고 서고 걷고 말하는 모든 그또래의 발달 시기보다 다 조금씩 앞서갔다. 부모 둘다 말이 많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고, 아이가 눈만 꿈뻑대던 그 시절에도 아이가 심심할까봐 계속 말을 걸어주던 나였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다른 세계가 얼마나 궁금할까? 혹은 자기는 모르는데 뭔가 소리나고 움직여지고 그러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또래보다 빨리 2단어 이상을 엮어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긴치 매아 아가 모무(김치 매워서 아가 못먹어)


내 아가의 인생 첫 문장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벌써 그렇게 많은 단어를 사용해서 이야기하냐고 무척 놀래셨다. 정말... 어린이집 선생님 만만세. 얼마나 많은걸 가르치고 계시길래 내가 가르친적 없는 김치가 맵다는 말을, 그래서 아가는 못먹는다는 말을 할줄 아는걸까. 생후 600일 무렵에 꼽아본 아이의 구사 가능 단어수는 대략 40개 남짓. 지금은 모르겠다. 너무 많다. 매일매일 니가 이 단어를 안다고?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메모도 없지만 저 문장만큼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평생 못잊겠지. 


우야간. 아가는 언어습득능력도 뛰어난 편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로 엄마아빠를 홀릴줄 안다.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보다 어머니라고 부르는 순간이, 빨리와 보다는 빨리오세요가 훨씬 더 영향력 있다는 것도 안다. 모자를 안쓰는 아가지만, 모자를 안쓰면 나갈수 없다는 말에 수긍할줄도 안다(물론 이게 늘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김치나 음식들이 매워서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자기가 먹을 과자를 달라고 하면 매워서 엄마는 못먹는다고 걱정(?)해줄줄도 안다.  


엄마 과자 하나만 줘
앙대. 매아. 모무
아가는 안매워?
앙매아. 아가 머거


그렇게 아이는 머리가 빠르게 성장하는게 보였고, 마냥 고맙고 뿌듯했다. 하지만 고마움도 잠시, 아이는 점점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있고 엄마와 노는 시간이 부족하다 느끼는지 집에 오면 더 나에게 매달렸다. 그나마 아이의 아빠가 함꼐 있는 순간에는 같이 목욕도 하고 다채롭게 시간을 보내는데 남편이 바쁜일정이 몰려잇어 1주일간 혼자 저녁에 아이를 케어해야하는 요즘같은때는 정말 지친다. 어제밤. 그 지침이 더이상 버틸 곳 없이 넘쳐 흘렀다. 


저녁도 먹고, 놀아주다가 통상적으로 잠드는 시간에 잠이 들었고 옷도 못갈아입고 기저귀도 못갈아입은 상태에서 아이가 땀흘리는 것이 보여 얇은 실내복으로 갈아입히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아이가 꺠버렸다. 깼다. 아이는 눈이 똘망해져버렸다. 푹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옷을 벗기면서 훤히 드러난 맨살을 보며 겨우 나간 감기가 다시 들어올까 마음이 급해진 탓에 무리하게 옷을 입히려 했기 때문이었다. 쭙쭙 빨던 손가락을 억지로 빼니 깰밖에... 그 손가락마저 툭 떨어진 상황에서 아이에게 옷을 입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옷은 입혔지만 아이는 깼고 나는 좌절했다. 


오모니 빠이 오셰오


아이는 나에게 본인이 할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말을 던졌다. 일어나야했다. 근데 어제따라 움직이기 너무 힘들고 늘어졌다. 딱 아이가 원하는 위치에 앉아있으면 되는건 알았지만 앉아있는게 잘 안됬다. 그래서 누워보았는데 보일러는 틀어놨지만 희안하게 바닥은 차가웠고, 2주간 고생했던 비염기가 이제 가라앉고있었는데 찬 바닥과 만나면 가열찬 기침을 만들어냈다. 수술 전에 목이 부어있으면 안된다 했는데 마른기침이 반복되니 마음이 급해졌다. 


20분도 넘게 실강이를 했고 아이는 10시 반이 넘도록 잘 생각이 없었다. 급기야 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그런 내가 서운했는지 울기 시작했다. 나는 폭발했고 아이는 울었다. 아이에게 해서는 안되는 태도를 반복했고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아이를 외면했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 매달렸다. 침대로 올라와 누워있으니 다시 아이는 날 잡아당겼고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또 터졌다. 


침대로 올라와 등을 돌리고 누우니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싫다고 뿌리쳤고 그러면 또 울면서 매달렸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어제는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외쳤다. 


엄마 아파. 아파서 엄마 수술 해야해. 근데 니가 원하는 대로 바닥에 누워있으면 엄마 기침이나.기침이 나면 또 아파. 그럼 수술하기 힘들데. 제발 와서 자! 


아이는 그말을 듣고 침대로 올라왔다. 서늘했다. 내가 아프니까 니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그 협박을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말이니까. 내가 아이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했는데 그말에 저 아이는 엄마가 걱정되서 올라왔다는 말이니까. 너무 미안했지만 아이에게 더이상 해줄 수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이불을 덮고 눕자 숨기 놀이를 하자 했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주고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밤 늦게 남편이 돌아왔고 나는 들어온줄도 모르고 뻗어있었다. 


7시 20분. 아침이 되어 아이는 일어났고 내가 눈을 뜨자 눈을 마주치면 사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어젯밤 일이 떠올라 한없이 미안해졌고 아이를 안아주며 어제 소리질러 미안하다고 몇번을 반복했다. 헤헤 하고 웃으며 내려간 아이는 자기 장난감 집에서 숨고 뛰고 하면서 어제의 일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했던 말을. 그말은 내가 어제 소리질렀던 것도 기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리지른 것보다 아프다는말을 더 크게 기억한다는 뜻이다. 아이가 엄마가 아픈게 걱정되 본인이 놀고싶은 마음을 꺾고 침대위로 올라온게 맞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이에게 협박을 한게 이번에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주부터였나. 갑자기 카시트를 안타겠다고 때쓰며 버티기 시작했다. 제일 좋아하는 사탕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힘이좋아져서 이제 아이가 뻗대면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이 자주오는데 카시트가 그랬다.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차에 탔고, 뒤늦게 차에 오른 나는 아이가 얌전히 카시트에 앉아있는게 보였다. 오늘은 잘 앉았네? 했더니 남편이 아니라고 엄청 뻗댔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안혔어?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이 


니가 카시트에 안타면 삐요삐요 차가 와서 엄마아빠를 잡아가.
경찰 아저씨가 엄마아빠 잡아가도 되?


라고 했단다. 그말을 듣고 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아이는 카시트가 싫지만 그래도 엄마아빠가 잡혀가서 없어지면 안되니까 카시트에 앉았던 것이다. 왜 갑자기 잘 타던 카시트를 거부할까 고민하니 요 며칠 급 날이 싸늘해졌고 우리는 옷을 두텁게 입혔다.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좁았던것이다. 그걸 모르고 억지로 앉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카시트가 5세, 18kg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건 다 뻥이었다. 다른 브랜드보다 유독 좀 작아보인다 싶긴 했는데 그래도 가을옷은 얇아서 왠만큼 버텼던것일뿐.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더 두꺼운 옷을 입을 것이니 저 카시트는 쓸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온라인으로 새로운 카시트를 주문했다. 


엄마가 걱정되서 였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더 나에게 밀착하는 아가. 아직 이번주는 다 가지 않았고, 최소한 오늘, 내일 그리고 일요일까지 3일간 아이를 혼자 케어해야한다. 그리고 12월에 있는 남편의 1주일간의 출장 역시 나 혼자 감당해야할 시간이 될 것이다. 


홍삼이라도 먹어야 하나. 체력이 좋아지면 덜지칠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그런 상황은 더이상 만들면 안되는데 생각이 미치자 몹시 심란해졌다. 그나저나 카시트는 언제오는걸까. 오늘은 저녁에 딸래미가 좋아하는 버스라도 타러 나가서 기분을 좀 풀어줘야겠다. 


미안해. 아가. 너무 미안해. 소리질러서, 협박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 



매거진의 이전글 2살 아기에게 아빠의 존재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