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Dec 17. 2021

당근은 피곤해

임신한 지인만 나타나 봐요. 다 퍼드립니다.

아이가 이제 25개월에 접어들었다. 신생아 시절과 베이비 시절을 지나 이제 진정한 토들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주위에 한 살 정도 어린 아가가 둘이 있어 꽤 많은 물건과 옷들을 들려 보냈고, 나름 열심히 정리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24개월이 다가오기 시작한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카시트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카시트 벨트를 채우려 하면 뻗대고 울고 악쓰고. 이상하다 싶었다. 50일 무렵부터 단 한 번의 거부 없이 탔던 카시트였는데, 갑자기 이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찾아보니 아이의 키가 커져서 기존에 사용하던 카시트가 작아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듯. 생각해보면 갑자기 추워져서 두꺼운 옷을 입혔고, 옷 뒤에서 힘겹게 벨트를 빼서 끼우곤 했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아이가 카시트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36개월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겨울옷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유독 작게 나왔다는 독일 브랜드의 카시트였다. 요모조모 변형하면 7세까지 쓸 수 있다던 다른 브랜드를 샀어야 했는데, 안전한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선택한 제품이 2년 만에 무용지물이 될 줄이야. 무려 50만 원짜리인데 말이다.


6개월부렵부터 쓰던 데이베드도 그냥 보관함으로 방치되고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분리 수면을 시도했던 우리였다. 6개월부터 아이를 다른 방에서 재웠고, 깊이 잠들면 문을 닫고 나왔다. 우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들어가 살피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그건 아이의 자의지 이전의 단계, 아이가 침대에서 걸어 내려와 우리의 침대로 오기 시작한 그날부터 매트리스까지 대충 40  돈이 들어간 침대는 방치 중이다. 여기에 다치지 말라고  범퍼까지 10만원 넘게 들여 껴놓지 않았겠어? 돈덩어리다. ... 이건 메트리스만이라도 처분하고 싶다. 아이가 높아서 불편해하니  안올라간다. 스프링 메트리스 대신 라텍스만 깔아놔도  나으려나...


여기에서 끝나면! 내가 억울하지 않은데, 나름 1년 넘게 알뜰하게 잘 쓴 디럭스 유모차도 베란다에 방치 중이다. 아이의 체중이 슬슬 올라가고, 디럭스 유모차의 발끝 부분이 살짝 올라가 있어서 키가 자란 아이가 쓰기 불편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물론 발판을 내리면 사용할 수 있지만, 내가 엄선하고 또 엄선한 유모차는 너무나도 이뻤지만, 나는 이쁨보다는 가벼움을 선택했다. 20KG짜리 디럭스 유모차는 핸들링이 진짜 최고였고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한 손으로 대충 밀어도 너무나도 잘 굴러갔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어떤 동선을 선택하건 무조건!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유모차 무게 + 아이의 무게가 30kg를 넘어가는 순간 나는 절충식이라며 디럭스와 함께 받은 다른 유모차를 꺼내기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현관으로 혼자 옮길 수 있는 무게라는 점도 유효했다. 무려 컬러를 깔맞춤 한 가방과 풋머프까지 다 갖춘 우리의 디럭스 유모차는 그렇게 멀쩡한채로 계류중이다.


여기에 인스타그램에서 너무 예뻐서 홀랑 반해서 산 플레이 하우스 커버가 한몫하고 있다. 그게 왜 문제냐고? 커버일 뿐인데? 그 커버를 씌울 유아용 이케아 침대를 굳이 중고로 샀기 때문이다! 집에 원래 이케아 침대가 있었다면, 함께 사용하면 되는 거였지만 나는 그 커버를 쓰기 위해 침대를 샀다. 그리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아이의 머리가 플레이 하우스 천장을 뚫고 갈 기세가 되었고, 우린 더 큰 플레이하우스를 선물 받아 플레이하우스용 침대를 치우게 된 것. 여기에 매시 소재로 북유럽 느낌 뿜뿜하는 20만원짜리 아기띠도 상자에 보관중이니...


그렇게 5가지 용품을 합하니 대충 180만 원 돈이 뚝 떨어졌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크기도 크다. 집안에서 부유하는 거대한 덩어리들이 5가지나 된다니. 정말 끔찍하다. 한때 미니멀 하우스를 꿈꿨던 나의 공간에 저렇게 엄청난 물건들이 자리하단. 대체 저 물건이 차지하는 자리는 몇 평이란 말인가.


물론. 당근을 하면 된다. 되긴 되지. 그러나 해본 사람은 안다. 특히 아이의 물건은 작은 스크래치 하나에도 몹시 민감하다. 당근이 활성화 되면서 중고나라에서는 저런 덩치의 물건들이 잘 안나간다. 덩치가 큰 물건들은 택배도 안되고 직거래만 가능하다. 누군가가 차로 와서 그 짐을 싣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엔 유모차와 이케아 침대, 데이베드 등등은 다 너무 덩치가 큰 것이다. 심지어 데이베드는 슈퍼싱글 사이즈라고. 내가 그렇게 큰걸 아이가 다 클 때까지 쓰겠다고 샀다고. 기가 막히게도.


물건의 상태도 너무 멀쩡하고 부딪히거나 사고 한번 난적 없는 물건들이지만 그 거래는 쉽지가 않다. 차라리 누구 주위에 아이를 갖는 사람이 생기면 아낌없이 다 주고 싶은데 이 시국에 결혼하는 지인도, 심지어 아이를 갖는 지인도 찾기 드물다. 애매하게 판매하느니 그냥 주는 게 속 편한데, 그 또한 쉽지 않다. 아기침대는 1년, 카시트와 유모차는 2년이면 그 수명을 다한다. 물건이 상하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크기가 맞지 않아서 말이다. 일단 올려는 놓겠는데, 무료 나눔으로도 안나가고 있는 매물들을 보고 있자니 귀찮기가 이를데가 없다.


내가 지금 이런 심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의 카시트 거부로 우리는 직구까지 해가며 새 카시트를 샀고! 무려 한달에 걸쳐 드디어 오늘 입성! 고로, 기존에 사용하다던 그 튼튼하고 멀쩡한 15kg에 달하는 카시트도 베란다에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물건은 쌓이고, 이런 물건을 어찌할까 고민할때마다 둘째이야기를 묻는 사람들도 성가시고. 당근은 더 귀찮고. 중고나라는 가능성이 너무 떨어지고. 어찌해야할지 너무 고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4개월 아가에게는 얼마나 많은 언어가 축적되어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