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퇴원이다

갑상선 결절 제거 수술기

by 김옥진


2일 차에 수액을 다 뺐고, 수술 3일 차 저녁. 드디어 정맥에 꽂은 바늘을 뺐다. 손목에 꽂은 주사 자리는 이미 노랗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고,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좀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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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의 통증도 확연하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는 거의 안 나왔지만 2일 차와는 또 다른 강도의 편안함이 왔다. 언제나 돼야 목소리가 돌아오나 검색할 여유도 생겼다. 미리 챙겨간 마사지용 잔으로 어깨와 뒷목을 밀어내니 뻑뻑한 느낌도 많이 가셨다.


식사는 여전히 죽이지만 목 넘김이 수월해져 반찬들을 먹는 것이 아주아주 편해졌다. 이쯤 되면 퇴원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런 생각이 든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주치의 선생님이 없다. 5초 만에 스쳐 지나갈지언정 주치의가 한번 봐주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면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컨디션 체크하러 들어오셨고, 하루에 대략 5~6번 정도 혈압과 체온을 재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병상 커튼을 열었다. 별생각 없이 이어폰을 끼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귀가 뜨거워져서 1시간 후에 다시재는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옆자리 환자분은 여전히 채혈과 수액에 시달리고 있었고, 나는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않은 이상한 베드에 누워 비스듬히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목보다 엉덩이가 더 아플지도 모를 상태가 되었다.


아프거나 말거나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나의 사랑하는 아가였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시가로 갔다. 입원하는 날 어린이집에 보내고, 수술 날 오후 일찍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시가에서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을 보낸 후 퇴원하는 월요일 아침에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시킨 후 퇴원하는 것이 우리의 스케줄이었다.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고, 나는 사진과 영상을 볼 때마다 "아랫집에 너무 민폐다"생각하며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야 했다. 첫날 엄마에게 가겠다며 문 열라고 장렬하게 울어재끼던 아기는 그래도 엄마를 떠올리며 울거나 찾는 빈도가 많이 잦아졌다 했다. 아빠와 단둘이 있는 것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다만 늘 짧은 시간만 보던 시부가 아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약간의 특이사항이고. 늘 귀엽고 예쁜 모습만 보닥 떼쟁이 베이비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하고 적지않이 당황하신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 혼자 아이를 케어하는 쪽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쪽이 남편의 스트레스 경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그건 매우 유효했다.


유난히 엄마 껌딱지인 아가였다. 엄마 껌딱지. 아빠에게는 "시여!"를 반복하고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아이와 싸우기 일쑤인 남편이었다. 너는 왜 내 사랑을 몰라주냐!!! 그런 마음인 듯했다. 입원하기 전, 귀금속업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금반지 하나를 맞췄다. 입원하기 하루 전날 연애 때부터 끼고 있던 은반지 자리에 그 반지를 끼워주고 말했다.


아가와 싸움이 나거나 화가 날 때마다 생각해
부인이 이거 만지면서 참으랬다. 참으랬다. 참으랬다.


남편은 웃었지만 웃을 일이 아닌 것 정도는 안다. 아이와의 충돌은 늘 있는 일이었고, 남편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아이가 크게 떼쓰고 울면 시끄럽다고 말해 놀란적도 있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도 감정적인 부분에서의 충돌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아프고 집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냥 심란했다.


KakaoTalk_20211210_133932888.jpg 무려 18K. 꽤 목돈이었지만 이쁘게 잘나와서 만족한다.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됬어야 할텐데


병원에 입원해서의 유일한 장점은 아이 낳고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쉰다 생각하고 다녀오기로 한 입원이었다. 하지만 보송보송 아가의 살결이 너무 그리웠고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한없이 자고. 짬짬이 걷고만 반복해 그런가 내가 생각해도 회복이 빨랐다.


엉덩이가 아픈 게 걱정이 될 즈음. 입원 때 들고 온 짐들을 다시 살폈다. 3박 4일 여행에도 가능한 가방 하나가 꽉 차고, 또 엄청 큰 에코백이 꽉 찼다. 입맛이 없으면 먹으려고 김도 챙겼더랬다. 씻고 하면 필요한 속옷과 샴푸 비누 화장품에 마스크팩까지 챙겼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입원 동안 쓴 물건은 핸드폰, 접히는 빨대, 텀블러, 칫솔, 치약, 일회용 마스크, 히트텍 위아래 한벌, 마사지 도구, 슬리퍼, 양말, 크리넥스, 종이컵뿐이었다. 찜질팩도 병원에서 다 준비해주었고, 다른 환자분들 민폐 될까 봐 마지막 날에도 샤워는 못하고 나왔다. 혹여 미끄러져 다치면 안 되니까. 자느라 영화는 한편 본 게 다고. 코로나로 많이들 챙기는 가습기는 아예 가져갈 수도 없었다. 목이 깔깔해서 가져간 김도 못 먹었다. 엄밀하게는 외부음식 반입 금지다. 목이 불편해 고개 숙이기가 어려우니 얼굴 씻고 화장품 바를 일도 없다. 왜 그렇게 많은 걸 가져갔을까.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결국 풀지도 않고 가방에 있는 그대로 다시 들고 온 게 태반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시가를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바빠졌다. 아직 회진도 돌기 전이건만 바삐 자리를 정리하게 되었다.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상태가 되었을 무렵 의사분이 한 무리를 이끌고 회진을 오셨고, 또 5초 만에 휭 사라졌다. 첫 방문처럼 간호사 분과 레지던트 분이 들러 사후 관리 방법을 알려주셨고 설명이 끝나고 퇴원 준비를 했다.


퇴원도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후 관리 설명은 주치의 담당 간호사와 입원병동 간호사분께 듣고, 비용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약을 받을 수 있다. 비용 정산한 영수증 아래에 약을 신청하는 쪼그만 표가 붙어있다. 아직도 종합병원이 서툰 나는 그 작은 표딱지를 안 챙겨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나는 아직 암인지 아닌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정산을 해야 했고 대략의 금액은 190만 원. 큰돈이다. 큰돈이 나갈 예정이었다.


남편은 출발을 했을 뿐인데, 난 정산까지 모두 마치고 건물 밖에 나가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바깥공기를 맡고 싶었다. 드디어 남편을 만났고 차에 탔다. 이제 그 뻐근한 침대는 안녕이다. 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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