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결절 제거 수술기
전신마취의 문제는 마취 풀리고 한동안 물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목이 마르지만 입술을 축여줄 사람도 없었고, 코로나로 가습기를 쓸 수도 없었다. 목이 아팠고, 물이라도 마시면 좀 나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다였다. 목이 미친 듯이 무거웠지만 몸은 그래도 움직일만했다. 수술 끝나고 병실로 올라와 내 침대로 옮겨갈 때도 일어나서 걸었다. 예상대로였다. 제왕절개보다는 훨씬 덜 아팠다. 제왕절개 후에는 하루를 꼬빡 누워있었고, 그다음 날 일어날 때는 온몸의 장기가 다 아래로 쏟아지는 그 묵직함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건 물만 안 마시면 버텨지는 강도였다.
온몸이 무거운 그 사이 레지던트로 추정되는 의사분이 다녀가셨고, 외래 수술 설명해주신 간호사분, 수없이 많은 병동 간호사분들이 다녀갔다. 계속 살펴주고 기침 가래로 힘들어지자 약도 추가해주셨다. 오후에 담당 의사 선생님이 다녀가셨고 나는 부러 병동을 돌며 걷다 왔다. 역시 세상 시크하고 바쁜 선생님은 5초 목의 상처를 둘러보시고 쓱 나가셨다. 따라오셨던 간호사 선생님은 따라 나가셨다가 다시 들어와서 간단한 설명을 더 해주셨고. 물을 많이 마시고, 또 많이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 했다. 회복이 빠르다면 이쯤이야. 하지만 걷는 것은 예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걷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걷다 보면 호흡이 커지고, 그러면 기침이 난다. 코 시국에 기침이라. 그 자체로 병동에선 민폐인데 심지어 나는 기침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목의 피부를 절개해 수술을 한 탓에, 목에 자극이 가는 행동은 두루 좋지 않다.
사실 기침보다 더 강하게 나를 지배했던 것은 졸음이었다. 회복기간 내내 얼마나 지루할까 싶어 노트북이랑 멀티탭, 충전기까지 바리바리 챙겨 왔지만 현실은 잠과의 싸움이었다. 수술 직후 금식기간 동안만 잔 게 아니다. 정말. 쉬지 않고. 계속 매일 잤다. 이렇게 자면 사람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밤은 밤이라 졸렸고 낮은 낮이라 졸렸다. 회복을 위해서는 물도 많이 먹고 많이 걸어야 한다는데 그러기엔 하루 종일 너무 졸렸다. 자고 자고 또 자다가 잠시 굳은 의지로 일어나서 걸었다.
수술을 했던 여의도 성모병원은 동관과 서관으로 되어있었고, 내가 머물던 서관과 동관은 얼핏 보기에는 엘리베이터를 기점으로 공간이 나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걸어 다니니 뒤쪽 휴게실로 이어져 있었다. 서관은 간호병동, 서관은 보호자가 동석(?)하는 병동인 듯했다. 간호병동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간극이 무엇인지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간호병동은 그래도 약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나마 좀 나은 상황의 환자가 들어오는 분위기였다면, 보호자가 함께 들어오는 병동은 한눈에도 병증이 위중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수액액을 3~4개씩 주렁주렁 달고 있거나, 걷기 힘들어 부축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 보였다. 기계가 달려있어서 어차피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환자도 얼핏 보였다.
내가 병원을 싫어했던 이유가 기억났다. 아픈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몸과 마음을 많이 무겁게 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코 시국이 고마웠던 건,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병상들이 커튼을 치고 있어야 한다. 걸어 다니면서도 그분들도 나를 보지 못하고, 또 나도 그분들을 다 볼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아파서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하는데, 누군가는 회복을 위해 걸어 다닌 다는 것. 그것 자체가 크나큰 위화감으로 작용하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조용히 병상으로 들어가 눕게 된다.
내가 있던 병실이라고 나 같은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옆에 누워있던 환자분은 보름 가까이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하셨다. 잠깐 입원하고 퇴원하시는 어느 분은 항암 12번 중 절반을 해내셨다고 했다. 다만 목이 좀 아파 죽을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이슈가 없는 나 같은 환자는 아프다 우는 소리 하는 것도 사치였다. 하루에도 3번씩 채혈을 하고, 금식했다 식사했다를 반복하는 분도 있었다. 급성신부전증으로 들어왔는데 루프스 증상이 있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앓는 소리'를 밤새 내었다. 신부전증이니 간이 있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데 각종 주사약과 처치로 인해 밥만 먹으면 헛구역질이 나와 음식을 먹을 수 없고, 그럼에도 의사는 회복을 하려면 많이 드셔라 말하고 있었다. 항암 하러 오신 분이 본인이 미리 신청해두신 흑임자죽을 드시라며 건네자 맛있게 드시며 말씀하셨다.
아유. 입원해서 처음으로 먹는 것처럼 먹었어요. 감사해요.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간을 관찰할 여유라도 있는 환자였다. 물론 나에게도 고난의 순간은 있었으니 수술 끝나고 하는 첫 식사가 그랬다.
목이 퉁퉁 부었고, 압박감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쌀밥이 나왔다. 고기반찬, 갓김치와 함께. 일반식. 와. 당연히 죽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한 톨도 못 넘기겠더라. 그 깔깔한 밥을 먹으라고 하다니. 이 병원 진짜 환자에게 너무 하드 트레이닝시키네 싶더라. 한술 겨우 삼키고 나서 GG 치고 난 다음의 미션은 약 먹기였다. 그나마 고개를 좀 숙이고 먹으면 넘어는 가는데, 알약이라니. 알약은 고개를 뒤로 확 젖혀야 넘어가는 게 나의 약 먹는 방식인데 엄두도 안 난다. 끓어오르는 가래와 잔기침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약이었다. 그걸 안 먹고 기침을 계속하면 목에 실핏줄이 터지거나 해서 수술 부위가 상할 수 있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는 밥도 못 먹는 그 목구멍으로 알약을 밀어 넣더라. 꾸역꾸역. 또 그렇게 약을 먹고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