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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an 20. 2022

할머니 자개 화장대를 집안에 들이기로 했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용하시던 자개 화장대를 우리가 가져오기로 했다. 리폼해서 콘솔로 들일 통통한 마음을 먹고있다. 남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셨던 분이었고 요양병원 생활이 길어지시면서 끝내 증손녀를 직접 안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왠지 화장대는 내가 가져오고 싶었다. 어른들의 흔적을 하나정도는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미친듯이 화려하고 빼곡한 자개도 아니고, 화이트&우드 컨셉의 가구 구성에 통일성을 깨버리는 조합이지만 이상하게 난 그 할머니 화장대를 버리고 싶지 않다.


여기엔 몇가지 문제가 있다.


1. 화장대를 놓을 곳이 없다. 최적의 장소에는 지금 서랍장이 있다.

2. 서랍장을 이동하려면 집안의 다른 서랍장을 정리해서 버려야 한다

3. 예상대로 그 서랍장에 물건이 가득하다.

4. 심지어 서랍장 위에도 물건이 가득하다.

5. 설상가상 물건을 다 정리한다 해도 서랍장을 넣을 곳이 없다.


정말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 집에 빠른 시일안에 아이가 생길 것이고, 그 아이는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재낀 물건들의 존재이다. 방 3개, 화장실 2개. 부부 침실, 재택하는 남편의 업무공간용 방 하나, 그리고 2년만에 아이방으로 바뀐 옷방. 우리집엔 그렇게 3개의 방이 있었다.


호텔같은 방에 대한 로망에 컸던 우리는 침실에 침대와 협탁 딱 2가지만 놓았다. 작업실엔 책장과 CD장 그리고 책상이 들어왔고, 거실엔 소파, 주방엔 식탁, 그리고 작은 방에 옷장과 서랍장을 넣었다. 2룸 빌라에 살때 샀던 옷장을 굳이 3칸 더 사서 방에 가득 벽처럼 채웠다. 그게 그렇게 뿌듯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셋팅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이가 생겼고, 옷방에 있던 옷장과 서랍장은 어디든 이동을 시켜야만 했다.


호텔같았던 휑하던 침실의 한쪽벽은 옷장으로 채워졌고 이사하면서 추가로 주문한 3칸의 옷장이 없었다면 서랍장 2개 중 하나는 최소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 애매하게 한 40cm 정도의 공간이 비어버렸다. 옷방에 있던 모든 서랍과 옷장을 우리방으로 옮겼고, 그중 하나는 갈길을 잃고 방황하다 작은방에서 큰방으로 이동하는 약간 복도비슷한 공간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렇게 또 2년이 지난 상태에서 우리는 5칸짜리, 키 150cm에 달하는 서랍장을 이동시켜야 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당장 급하게 가구를 들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집안을 정리해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물건이 들어온 상태에서 이동하기엔 분명 그 자개화장대의 무게는 상당할 것이다. 난 한번 이사를 하면 뭘 바꾸거나 하는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아이방으로 인해 변수가 너무 자주 생긴다.


줄자를 집어들었고 서랍장이 이동 가능한 위치를 재 확인하다 아기 침대 발치에 딱 서랍장 사이즈의 공간이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실행에 옮겼다. 남편 역시 작업실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작업실에 아기용 플라스틱 서랍장을 넣었다. 애매하게 굴러다니던 각종 물건들을 버리고 쌓아서 공간이 넓어지는 아기가 들어가도 좀 덜 힘들어보였다.


나름 아이 물건을 줄만한 대상이 생길때마다 이집 저집 보냈는데 사용 기간이 길었던 물건들은 집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방치되어있었다. 타이밍이 안맞은 탓이다. 하지만 드디어! 임신을 한 지인이 나타났고 비록 중고로 팔면 20만원은 넘게 받을 물건들이지만 축하선물이라 생각하고 전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도 길어야 2년 사용할 물건이다. 심하게 비싸게 주고 산 유모차와 아기띠고 사용시 만족도도 높았던 물건들이다. 당연히 관리도 깔끔하게 했고 물선 상태도 좋다. 팔아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다 알수 없는 미련과 애착이 남아 그러지 못했다. 다음주면 그 큰 덩치들이 이 집 밖을 나간다.


그렇게 물건이 나가고 나면 베란다쪽 창고(?) 앞에 쌓여있던 물건들도 집어넣을수 있고, 아이방도 좀더 깔끔하게 쓸 수 있다. 할머니 화장대를 콘솔로 개조하고 나면 서랍장 위에 올려놨던 내 화장품은 그 안에 집어 넣으면 되고. 드디어 몇년만에 화장대를 갖게 되겠군.


그리고 남은 미션은 아이방에 밀어넣은 서랍장의 내 옷들을 정리해서 치우는 것. 할수있겠지... 할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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