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조금은 쌀쌀한 봄날 이른 아침 읍내 상설 시장 앞 도로 맞은편 금은방 앞에 조그만 좌판을 차려놓고 80세는 족히 넘을 것 같은 할머니 한 분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빨강과 파랑 연녹색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여리고 싱싱한 쑥 머위 냉이 달래 국수댕이 꽃다지 광대나물들을 담아놓고 팔고 있었는데 내가 점심때쯤 다시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바구니의 나물들은 줄어들지 않았고 할머니는 거칠고 앙상한 손으로 시든 나물을 좀 더 싱싱하게 보이도록 아래 위로 섞고 뒤집으며 바구니의 매무새를 고치고 있다.
여름날 구릿빛 얼굴을 하고 깡마른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석양빛을 받으며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은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가며 있는힘 없는힘까지 쓰다 보니 가녀린 목과 팔뚝에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고 목에 두른 가느다란 연분홍빛 수건은 땀에 절어 축 늘어져 걸을 때마다 가슴 앞에서 좌우로 무겁게 흔들리고 있다.
가을도 깊어 스산한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오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저녁 어스름에 정처없이 떠돌던 늙은 개 한 마리가 큰 도로를 건너 주택가로 접어들었는데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 위에 흠뻑 젖은 진한 갈색 털이 착 달라붙어 걸을 때마다 실룩거리는 엉덩이가 슬퍼보이고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쁘게 걷다보니 세 다리는 더 심하게 절뚝거리고 개가 지날 때마다 골목 옆으로 줄 지어 있는 집집마다 전등불이 켜지고 등불을 켜는 임무를 마쳤다는 듯 어두운 골묵으로 사라져버렸다.
겨울도 한 겨울 아침 오일장이 서는 읍내 사거리 골목길 벽 앞에 7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두꺼운 비닐 위에 신발을 펼쳐 놓고 팔고 있는데 공중으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터라 시끌벅적해야 할 장날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신발 보따리를 트럭에 싣고 이 근처 오일장을 찾아다니는 듯 먼지가 묻어 오래된 듯한 느낌이 드는 노브랜드 운동화와 검은 플라스틱에 갈색 털을 붙인 겨울이면 어르신들이 즐겨신는 털신들이 구겨지고 얼룩진 비닐 위에 자유롭게 펼쳐져 있는데 다 합쳐도 30켤레가 채 안 되는 조그마한 노점을 지키며 추워서 앉지도 못하고 가끔씩 추위를 털어내려는 듯 몸을 짧고 강하게 흔들었다.
싯달타 왕자는 동서남북 문 밖으로 나갔다가 생로병사 인생무상을 깨닫고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 부처가 되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나는 어지러운 세파에 몸을 맡긴채 시시때때로 생로병사 인생무상을 느끼기만 할 뿐 수도자가 될 수는 없는 운명이기에 그저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위고하 신분과 명예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인생은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헸으니 잘났거나 못났거나 기껏해야 한 세상 100년도 못 사는 삶이니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스스로 위로해 가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인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