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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06. 2022

급식실 풍경


 “아유 선생님까지 뛰면 어떻게 해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조심하겠습니다.”


 영양사 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단체로 속도위반이다. 급식실 문 앞에서 급정거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배고픔을 인내심으로 버텨온 아이들에게 급식실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차분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맛있는 점심 생각에 기대와 즐거움에 들떠 있을 때 어른이든 아이든 마음이 급해지고 걸음걸이는 결코 점잖을 수 없다.     


 아침과 점심의 중간쯤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맛있는 냄새가 복도나 현관의 공기 중에 살짝 떠돈다. 냄새의 진원지는 건물 맨 끝 구석에 있는 급식실이다. 냄새는 약한 편이라 조리되고 있는 음식의 종류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아침을 안 먹은 사람이라면 먹고 싶은 간절함으로 식단표를 안 보고도 무슨 요리인지 알아맞힐 가능성은 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며 몇몇 아이들이 시계를 흘낏 쳐다본다.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는 한숨을 내쉰다.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질문을 해도 시큰둥한 답이 돌아온다.       

 아이들이 양손으로 공손하게 식판을 받쳐 들고 밥과 국 반찬 앞에서 줄을 선다. 식판에 오를 첫째 음식은 눈부시게 하얀 쌀밥이다. 한 톨 한 톨 저마다 빛을 발하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속에 사이좋게 어우러져 아름답다. 밥만 먹어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조리사님들의 배식 속도는 여유롭기 짝이 없다. 

 “순이야 침 몇 번 삼켰어?”

 내 앞에 있는 순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첫 번째 물음은 ‘순희야 너 침 삼켰지?’라고 해야 맞지만 침을 삼킨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바로 다음 단계인 ‘몇 번 삼켰는가’ 물어본 것이다. 

 "두 번요."

 순이가 모기 소리 만하게 대답한다. 

"나도 두 번"

 고등어구이와 메추리알 장조림이 나로 하여금 침을 두 번 삼키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요구르트를 받는다. 음식의 종류만큼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평균적으로 대여섯 번의 인사를 하게 된다.          

 

 식판을 받은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도 가볍게 식탁으로 간다. 영준이가 거의 뛰다시피 걸어가며 국물을 바닥에 찔끔찔끔 흘린다. 이쯤 되면 틀림없이 식판의 경계가 무색하게 모든 영역에 국물이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영준이가 바삭한 고등어구이를 먹기란 글렀다. 


 아이들이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먹는 데에만 집중한다. 규진이가 고등어구이를 좀 더 먹고 싶다고 한다. 규진이를 데리고 4학년 줄 서 있는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끼어든다. 내가 같이 가지 않고 규진이 혼자 갈 경우 줄 맨 끝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급식실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앞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면 이렇게 말한다.  

 "아 뭐야."

 음식 앞에서는 한결같이 냉정하고 단호하다.         

 

 수영이와 재호는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반찬과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 서로 반대일 때 곧바로 거래가 성사된다. 진호와 영재 자리에서는 나눔이 이루어진다. 나눔은 보통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진호가 영재에게 자신의 고등어구이를 통째로 내어 준다. 물론 자신이 편식을 한다는 것은 숨긴다. 영재는 진호가 자기를 아주 좋아하는 줄로 착각할 수 있다. 준호와 미영이 자리에서도 나눔이 이루어진다. 준호가 미영이에게 사과파이 반 쪽을 내어 준다.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질까 염려하며 정성을 다 해 반으로 나눈다. 준호의 마음은 진심이다.

       

 여기저기에서 닥, 닥 식판 긁는 소리가 요란하다. 식판을 정리하고 뺑뺑하게 배가 불러 기분 좋은 아이들은 급식실에 들어올 때처럼 서둘러서 나간다. 

 "쿵쿵쿵 쿵쿵쿵."

 또 뛴다. 급식실에 올 때처럼 속도위반이다. 5교시 시작 전에 조금이라도 더 놀아야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만 종례 시간에 장황하게 잔소리를 할 필요가 있겠다.

      

 “아아아 아앙.”

 병설유치원 정호가 울음을 터뜨린다. 급식실의 평화가 깨진다. 

 “안 돼. 밥 먹고 먹어야지.”

 문제는 요구르트다. 고기만 좋아하던 정호가 오늘은 고기가 없으니 밥에는 아예 손도 안 대고 요구르트를 먼저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선생님은 밥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요구르트를 먹게 해 준다 하면서 벌어진 사태다.

    

 결국 정호는 원통해서 못 살겠다는 듯이 슬피 울며 바닥에 드러누워 뒹군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정호의 최대의 무기다. 선생님은 정호를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간다. 정호의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급식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그날 선생님과 정호는 급식실에 다시 오지 않았다. 둘 다 점심을 굶었다. 

    

 정호는 급식실에서 유명인사다. 며칠 전에 잔치국수가 나온 날이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손짓으로 나를 부르며 눈짓으로 정호를 가리킨다. 정호가 식판 앞에 기도하듯 앉아 있다가 젓가락을 집어 들고 국수를 한가닥 들어 올린다. 국수를 먹는가 싶더니 손으로 국수 한 가닥을 집어서 옆의 기둥 벽에 붙인다. 이어서 몇 개의 국수 가닥이 더 녹색의 벽에 붙는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여러 가지 모양이 만들어진다. 설치 미술 작품이다. 크게 될 놈인가?     

 

 왜 밥을 먼저 먹고 후식을 먹어야 하는가. 왜 밥을 먼저 먹고 반찬을 먹어야 하는가. 왜 밥과 국은 밑쪽에, 반찬은 위쪽에 있어야 하는가. 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가.


'정답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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