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배움

by ocasam

끓어오르는 분노를 한 김 빼고 다스려 고운 쌀밥을 만들어내는 밥솥의 유연함

열기에 부글거리는 속과 울컥울컥 솟구치는 화를 가라앉히며 국과 찌개를 만들어내는 냄비의 의연함

지글거리는 기름의 형벌을 견디며 찜과 튀김을 창조해 내는 프라이팬의 용기

묵묵히 배달 일을 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겸허함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칼마저도 끌어안는 도마의 희생심

잘난 체하지 않고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그릇의 겸손함

맑고 깨끗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들을 기꺼이 도와주는 소쿠리의 배려심

이것저것 다 받아들여 김치와 나물을 버무려 내는 대야의 포용력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필요할 때 선뜻 나서주는 국자의 친절함

질기고 연하고, 두껍고 얇은 것 가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가위의 정의로움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란 말이 있다.

무생물도 스승일진대 생물임에야 말해 무엇하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짜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