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처럼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공원의 황톳길을 걷고 있다.
허리는 90도로 굽었고 야윈 손에는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다.
50대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가 3미터 정도 뒤에서 따라간다.
헐렁한 옷차림을 하고 오른손으로 신발을 들고 있다.
하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할머니 발걸음을 응시하며 걷고 있다.
앞으로 가는 것도 같고 멈춰 있는 것도 같다.
걸어도 걸어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자로 잰 듯 그대로다
할머니가 뒤를 돌아본다
"아가, 얼렁얼렁 와.
"엄니, 천천히 가셔유."
어머니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들이 잰걸음으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허리를 굽히고 손수건으로 어머니 이마를 닦아준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잿빛 비둘기들이 소나무 꼭대기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하늘로 날아간다.
아들은 비둘기가 날아간 하늘을 쳐다본다.
한참 동안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아가, 얼렁얼렁 안 오고 뭐햐."
아들은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향해 소리친다.
'엄니, 천천히 좀 가시라니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