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크림

by ocasam

십여 년 전 겨울에 일본 큐슈로 여행을 갔다.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에서 주관한 단체여행이었다.

2박 3일인가 3박 4일인가 기억도 안 나는데

여성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행 마지막 날 일정은 아소산 말목장 관광

버스가 출발하고 10분쯤 지났을까.

가이드가 숄더백에서 크림통을 꺼냈다.

검지 손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어 크림을 퍼냈다.

손가락이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거의 다 써가는 중인 것 같았다.

손등에 골고루 펴 발라가며 크림보다 더 매끄러운 설명이 이어졌다.

"저는 부산과 일본을 오가면서 이거 없으면 겨울을 보내기 힘들어요."

"올 때마다 지인들의 부탁으로 한 보따리씩 사간답니다."


사람들은 가이드의 매력적인 설명에도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사람들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기들이나 어린아이들의 발꿈치나 손등이 거칠어졌을 때 바르면 즉빵이에요."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서서히 가이드에게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하는 사이 산중턱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세게 휘날리는 눈발 사이로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의 간판들이 희끗희끗 보였다.

좀 떨어진 곳에 검은 물체가 무리 지어 있었는데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추워서 밖에 있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는 말이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었다.

눈보라가 사람들을 여러 가게 안으로 골고루 밀어 넣었다.


특산품들이 많았지만 마유 크림을 파는 코너 앞에만 긴 줄이 생겼다.

가이드의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의 왕성한 구매력에 상인들은 신이 났고 매장 안은 활기가 넘쳤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리가또 고자이 마시다"


저녁 식사 전 온천에 들렀는데 우연히 몇몇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마유 크림 몇 개 샀어요?"

"저는 세 개요."

"저는 일곱 개요. 아무래도 너무 많이 산거 같아요."


저마다 몇 개나 샀는지 묻고 대답했다.

"선생님, 효과가 좋다잖아요. 믿고 써보죠 뭐."

"그래요, 많이 비싸지도 않고. 잘 산거 같아요."

서로를 위로하며 과소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나는 손자 손녀도 없고 발뒤꿈치도 이상 없었기에 한 통도 사지 않았다.

같이 간 교장선생님이 한 통을 주셔서 체험의 기회가 생겼다.


얼굴에 발라도 된다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

크림을 준 교장선생님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얼굴에 크림을 듬뿍 처바르고 잤다.

아뿔싸,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은 반들반들하고 베개는 찐득거렸다.

얼굴 대신에 베개가 마유 크림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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